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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7)

끝없는 죄의 고통에서 해방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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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냐시오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다양한 가르침을 통해 신적 조명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스페인 만레사 동굴에서 회심하고 있는 성 이냐시오.



이냐시오는 로욜라에 이어 만레사에서도 교회의 영적 유산으로부터 영적인 삶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이 배움은 단지 책을 읽음으로써가 아니라 실제로 수련을 하면서 이뤄졌다. 이 배움의 시기는 학자마다 다르게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대개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즉 ‘능동적 정화 과정’과 ‘수동적 정화 과정’ 그리고 이어지는 ‘신적 조명의 시기’다.





능동적 정화 과정

이냐시오는 만레사에 도착한 후부터 약 4개월간 그의 의지로 시작한 능동적 정화 과정에 들어간다. 이 시기 이냐시오의 삶의 모델은 로욜라에서 읽은 「금빛 전설」에 묘사된 한 인물, 오누프리우스였다. 오누프리우스의 극단적인 수덕의 삶을 모방하면서 이냐시오는 실제적 가난의 삶을 살았다. 매일 음식을 구걸하고 고행을 했다. 이전에는 유행에 따라 머리 매무새에 많은 관심을 쏟았지만, 이제는 머리도 제멋대로 자라게 두고 빗질도 이발도 하지 않았다. 손발톱도 그냥 자라게 두면서 외모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기도에만 전념했다. 이냐시오는 이 시기를 “정신의 내적 사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느끼는 마음 상태를 늘 누리고 있었다”고 상기한다.(「자서전」 n.20)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하느님을 더욱 열정적으로 섬기고 싶어하는 열망이 강해졌을 뿐 여전히 영적인 사정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떤 영적 현상을 느끼지만 이 현상의 배경 지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냐시오는 여전히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기사도의 이상을 가지고 오로지 자신의 수고와 힘으로만 하느님을 더욱 뛰어나게 섬기려고 했다.

이냐시오의 이러한 정화 과정은 고해성사와 병행됐다. 특히 이냐시오가 총고해를 한 곳은 몬세라트였다. 총고해의 순간은 이냐시오가 자기 내면의 영적 상태를 다른 이에게 완전히 드러낸 첫 번째 순간이기도 했으며, 자신의 죄스러운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는 의식이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프랑스인 베네딕도회 수도승인 장 샤농(Jean Chanon, 1480~1568)이 그의 총고해를 3일간 들었다. 3일간의 고해는 고해를 준비하는 기간을 포함했을 것이며, 당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기간이었다. 1492년에서 1570년 사이에 스페인에서는 많은 종류의 고해성사 예식서가 쓰였고 출판되던 시기였다. 이냐시오가 실제로 어떤 고해성사 예식서를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장 샤농이 준 고해성사 예식서를 사용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서 이 고해성사 예식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냐시오는 「영신수련」 56번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내 죄들의 경과이다. 즉 연차별, 혹은 시기별로 살피면서 일생의 모든 죄를 기억에 떠올린다. 이를 위해서 다음 세 가지가 도움된다. 첫째, 내가 살았던 장소와 집. 둘째,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가졌던 교제. 셋째, 내가 종사했던 일과 직업.”

고해성사를 위해 자신이 살아왔던 장소, 다른 이를 어떻게 대했는지, 자기 일 등을 숙고해 보도록 하는 점이 고해성사 예식서와 비슷하다. 하지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죄를 성찰하는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내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은 죄보다도 더욱 커다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함이다.

이냐시오의 정화 과정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정화 과정이 교회의 전통 안에서 시작됐고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능동적 정화 과정을 거쳐 이냐시오는 이제 수동적 정화 과정을 겪게 된다. 수동적 정화 과정에서 이냐시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수동적 정화 과정

이냐시오는 능동적 정화 과정 후 다가오는 유혹 그리고 이 유혹이 주는 두려움과 함께 ‘수동적 정화 과정’으로 이끌려 가게 된다. 「금빛 전설」에 나오는 오누프리우스의 삶처럼 앞으로 남은 칠십 평생을 어떻게 이 고된 생활을 해나갈 수 있겠는지 누군가 질문을 던져오는 듯한 고약한 생각이 들었다. 이냐시오는 이러한 생각이 훗날 그가 저술한 「영신수련」에서도 사용한 것처럼 ‘인간 본성의 원수(the enemy of human nature)’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인간 본성의 원수가 불러온 유혹에 격렬히 저항하며 영성생활을 지속했다.

이 시기 이냐시오는 자신의 영혼에 커다란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능동적 정화시기에 찾아왔던 기쁨과 행복의 마음 상태 대신에 어떤 때에는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한 채 불쾌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슬픔이나 의기소침을 겪기도 했다.(「자서전」 21항)

더 나아가 이냐시오는 세심증으로 매우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보통 세심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판단과 자유에서 나오는 것으로 죄가 아닌 것을 죄라고 임의로 생각할 때를 말한다.”(「영신수련」 346번) 이러한 세심증이 너무도 심했던 나머지 이냐시오는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유혹까지 겪었다. 자신의 힘으로만 거룩함에 이르고자 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던 이냐시오는 치유되는 길이 있다면 강아지 꽁무니를 따라다녀야 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기도를 주님께 겸손되이 청했다.

마침내 이냐시오는 주님께서 이런 방식을 거쳐 그가 꿈결에서 깨어나기를 원하셨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다양한 가르침을 통해 영들의 다양성과 영들이 엄습해 오는 방법을 깨닫게 됐다. 이 순간부터 이냐시오는 세심증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자비로이 그를 해방시키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러한 수동적 정화 과정을 거쳐 이냐시오는 이제 신적 조명의 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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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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