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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다시 한번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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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교도소 교도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이번에 00 아버지 성탄절 특사로 출소하는 것 아시죠? 꼭 와주셔야 되는데…. 일단은 용감하게 대답했습니다. 예 꼭 가야죠. 그동안 여러모로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러나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니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며칠 계속된 강도높은 판공성사로 많이 지쳐있었지요.

그래서 내일만큼은 집에서 차분히 지내면서 성탄을 준비하고 싶었는데… 또 성탄 무렵이라 손님들도 많이 올텐데… 하는 생각에 약간 억울한 마음이 스며들었습니다.

더구나 교도소는 얼마나 먼지 또 출소할 분은 마땅히 갈 곳도 없는 데다 지병까지 있어서 뒷바라지를 해드려야 될 상황이었습니다.
 혼자서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출소하면 어떤 방법으로 도와드려야 하나?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한 해결사 수녀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수녀님의 열정적 삶은 저를 얼마나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 수녀님은 오랜 기간 병원사목에 종사하셨던 베테랑 수녀님이셨습니다. 병원 운영 전반을 꿰뚫고 계신 수녀님 병원의 한계를 잘 알고 계셨던 수녀님은 일선에서 물러나신 다음 가장 사각지역에 놓인 환자들만을 위한 해결사가 되셨습니다.

수녀님은 정말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만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신바람 나는 여생을 보내셨지요.

 또 성탄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가장 최종적이자 구체적 표현인 육화강생(肉化降生)을 기억하는 시기입니다. 성탄의 핵심은 한없는 자기낮춤이며 겸손입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조건없는 헌신이며 극진한 사랑입니다.

성탄시기는 생명의 빛 구원의 빛이신 하느님 말씀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극도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신 겸손의 영성 마굿간의 영성을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몇 년 전 성탄 무렵 한 성지(聖地)에 들렀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성지관리를 담당하시던 신부님 강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성탄의 본질적 의미가 사라진 그 자리에 강한 상업주의의 물결이 주인처럼 자리잡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성탄은 선물교환이나 파티를 위한 외적이고 형식적 축제가 절대로 아닙니다. 겉치레뿐인 의미없는 성탄행사는 이제 그만 하면 좋겠습니다. 육화의 진정한 의미를 묵상하는 기회가 아닌 하나의 이벤트로 전락한 성탄행사에 아기 예수님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중심에 자리하지 않는 성탄행사는 무의미할 뿐입니다.

 성탄을 축하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성탄 행사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탄의 핵심적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묵상과 그로 인한 우리 삶의 변화나 쇄신이 수반되지 않는 성탄행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다시 한번 베들레헴의 마굿간으로 함께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가장 작고 여린 모습으로 구유에 누워 계신 구세주 하느님의 지극한 겸손을 조용히 묵상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연례행사처럼 장식용 마굿간에 잠시 머물다가 성탄시기가 끝나면 퇴장할 흙으로 빚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아기 예수님은 일년 내내 우리 마음 안에 거듭 탄생하셔야 할 살아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특
별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우리 이웃들 안에 늘 새롭게 탄생하셔야 할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이 은혜로운 시기 우리 주변을 한번 주의깊게 둘러보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주변에 아기 예수님께서 홀로 추위에 떨고 계시지는 않는지 살펴보길 바랍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미소하고 가난한 이웃들 문전박대 당하는 이웃들 소외된 이웃들 외로운 이웃들 가슴아픈 이웃들 심한 상처받아 속울음 우는 이웃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더욱 허전하고 쓸쓸한 탈북자 형제들 성탄절 특사로 가석방되어도 마땅히 오라는 곳 한 군데 없는 출소자 형제들 살을 에는 추위를 겨우 종이박스 한 장으로 막아내며 오늘은 어디에 머리를 눕혀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노숙자 형제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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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 12장 30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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