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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루가 3 10~18) - ‘지식보다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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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실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불교의 이야기가 있다. 석가모니의 제자 중 「반특」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많은 수행자들이 그를 가르쳤지만 반특은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이 그를 비웃고 귀찮게 여겼지만 그러나 그는 아무 말 없이 수행자들이 머무는 처소를 쓸고 닦으며 석가모니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석가모니 역시 그런 반특을 기특히 여겨 제자들에게 가르치는데 인색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어느 날 왕의 초청을 받아 왕궁으로 가게 된 석가모니는 반특에게 바루를 들게 하고 자기 뒤를 따르도록 한다. 평소에는 가장 뛰어난 제자가 석가모니 바로 뒤에 섰는데 그 자리를 반특이 대신하자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불만이 싹텄고 왕도 이러한 모습을 보고 놀란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많이 배우는 것보다는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똑똑한 제자들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알아듣는 것만큼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반특은 머리가 둔하고 잘 알아듣지는 못해도 하나를 알면 그것을 꼭 실천합니다. 그것이 똑똑한 제자들과 다른 점입니다』 석가모니의 예견대로 반특은 훗날 깨달음을 얻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가 자원이 되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서 자칫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도 있고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생활이라는 면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겠습니다만 「인생」과 「삶」이라는 관점에서는 「지식적인 면」보다는 「실천」이 훨씬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무슨 특별한 비법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요 매일의 사소하고 작은 실천들이 모여 값지고 의미 있는 인생을 창조해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주에 이어 계속해서 요한의 설교를 듣습니다. 요한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각각의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각자의 형편에 맞는 몇 가지 대답을 줍니다. 군중들에게는 『여벌의 옷과 음식을 가지고 있다면 가난한 이들과 나누라』고 그리고 세리에게는 『정한대로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내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는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대답합니다.
사실 여기에 나오는 요한의 대답은 너무나 평범하고 상식적입니다. 「자선과 희사의 중요성」 「세리가 정한대로만 받는 것」 그리고 「군인이 자기 봉급으로 만족하는」것 등은 정말로 기본적 상식에 속하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은 아직까지 아니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라는 점입니다. 정한대로만 받아야 한다는 세리의 문제만 봐도 이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검은 공생관계 때문에 「정한 것」 이상을 받는 것은 예수님 시대 세리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늘의 우리사회도 똑같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정해진 세금」이란 좀 억지를 부려 말한다면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말입니다. 변호사나 세무사를 쓰던가 아니면 뒷돈을 찔러주면 1억의 세금이 천만원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사회입니다. 그리고 자선과 희사의 문제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자기 봉급으로 만족하라는 문제도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혹자의 표현대로 어쩌면 이러한 문제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왜 세례자 요한은 너무나 평범하고 상식적인 그러나 영원한 숙제인 이러한 대답을 하겠습니까! 필자는 그 이유를 『회개에는 왕도가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회개란 「지적 접근의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것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란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즉 왕도를 찾기 전에 먼저 알고 있는 바의 실천이 회개의 요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요한의 대답을 통해 음미해야 할 점은 회개란 그 결과가 「타인」에게 미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난한 이와 나누는 삶」 그리고 「부당한 방법(세리)과 힘(군인)의 사용 거부」는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진리의 실천이지만 그 결과는 나에게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지요. 요약해보자면 회개란 실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란 점 그리고 나의 변화가 타인에게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함이 바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홍금표 신부〈원주교구 삼척종합복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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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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