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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67) ‘인간’의 품위를 잊지 말라 / 장재봉 신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마르코 14,1-15,47) 겁쟁이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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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복음을 읽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시대, 그 상황을 살았더라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분의 죽음을 받아들였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끝까지 의연하게 그분 편을 들 수 있었으리라 자신할 수 없습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처럼 무지막지하게 굴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여느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그분께 실망한 마음이 분노로 바뀌어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질러댔을 것만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며 ‘요셉’이라는 의로운 인물의 보호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제 하늘로 돌아가는 날, 그분의 찢긴 몸은 또 다른 요셉이 정성껏 거두었습니다. 묘합니다.

따져보면 요셉 성인은 하느님 때문에 고생바가지를 둘러쓴 인물입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몸고생은 차지하더라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진리’를 가슴에 담고 묵묵히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비밀을 들키지 않도록 그분의 계획이 망가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말과 생각을 단속하는 일도 고행이었을 것입니다. ‘내 입’을 침묵시키고 ‘내 눈과 마음’이 의심치 않도록 ‘마음단속’을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니까요.

마르코 사가는 아리마태아 요셉이 “하느님 나라를 열심히 기다린 사람”이었다고 밝힙니다. 그가 “당당히”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달라고 청한 사실을 ‘고마워’하는 눈치입니다. 마태오도 “예수님의 제자”임을 천명하고 루카도 “착하고 의로운 이”로 묘사하며 칭송 모드에 동조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만은 “예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요한 19,38)며 따끔히 질책합니다. “두려워 그 사실을 숨겼다”는 요한의 표현에서 우리는 아리마태아 요셉이 겁쟁이였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되는데요. 저는 오늘 겁쟁이의 변화된 모습이 너무 좋으니, 웬일입니까?

그는 그날부터 예수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들통이 났을 겁니다. 의회에서 추방되었을 것이고 일상의 불이익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상했기에 선뜻 나서지 못하며 주님의 제자임을 밝히는 일마저 조심스러워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리 소심하고 겁 많던 요셉이기에 그날 그의 변화는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는 이미 ‘죽음’을 당한 예수, 다 끝장나버린 초라한 청년 사형수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난한 인간을 다만 연민과 사랑과 정성으로 품었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린 착하고 의로운 이’였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라 싶습니다. 그분의 제자였지만 결코 뭔가를 얻어내려고, 어떤 실익을 챙길 꿍심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 싶습니다. 그분 곁에서 언제나 더 높은 자리를 탐했던 제자들이 죄다 도망쳐버린 사실에 빗대면 더더욱, 겁쟁이 요셉의 따름이 진실이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날도 그는 겁이 났을 것입니다. 주위의 이목이 두려워서 몸을 숨긴 채 멀리서 그분을 지켜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없이 망설이며 뒷걸음을 치면서 한 발 한 발 그분의 길을 따랐을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하나 둘 도망치는 모습에 아연실색, 번민했을 듯도 합니다. ‘누군가’ 그분의 시신을 거둘 기미만 보이면 슬금 ‘돌아서리라’, 다시는 ‘미련 갖지 않으리라’ ‘그분과의 인연을 감쪽같이’ 묻고 잊으리라 다짐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겁쟁이’였으니까요. 그 때문에 더욱, 그의 마지막 결단이 존경스럽습니다. 자신의 새 무덤을 아끼지 않은 통큰 선행에 감격합니다. 결 고운 아마포를 사러 달려간 정성을 고마워합니다.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는 여타 도사들처럼 홀로 지내지 않고 기꺼이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셨습니다. 양부 요셉의 보살핌으로 자라났으며 지상의 삶을 마감하실 때에도 또 다른 요셉에게 당신 몸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당신을 몽땅 내어주십니다. 그분께서 주신 사랑의 에너지를 이웃에게 ‘사랑과 용서와 기쁨’으로 사용해달라 당부하십니다.

새삼 예수님께 두 요셉이 도움을 드린 일이 인간으로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이야말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변화된 믿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키운 ‘인간’의 지위를 기억하고 하느님의 아들의 마지막 길에 예우를 갖추어드릴 줄 알았던 ‘인간’의 품위를 잊지 말라는 주님의 배려로 듣습니다. 겁 많고 두려움 많은 우리가 당당해지도록 단단히 전구해 주시기를 두 분, 요셉께 청합니다.


장재봉 신부(부산교구 활천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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