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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예술 부활 대축일 - 외형적인 자신의 죽음과 내적인 자신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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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 다음날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달려가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일러주었다. 제자들이 무덤을 직접 보니 수의가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 부활은 인류 죄악과 세상 불의에 대한 승리다. 죽음의 극복이며 한 줌의 재로 돌아갈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교리다. 그분의 현세생활, 죽음, 묻힘과 달리 부활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역사상 획기적 사건이므로 제자들마저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 후 다시 살아나셔서 500명이 넘는 교우들에게 나타나시고(1코린 15,5-6),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운 생선을 드셨으며(루카 24,42-43), 당신 부활을 불신하는 토마스 사도에게 직접 못 자국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셨다(요한 20,25-28).

 그리스도 신앙에서 예수 부활의 의미는 인간이 죽음을 넘어 영생에 참여함은 물론이고 실증주의와 물질 만능 사상에 침몰된 인간 존엄과 근본가치를 부활시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마을에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마을에서 가장 인격이 높아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그 부자의 생일에 큰 잔치가 있어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어느 현자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찾아가 하인에게 "주인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하인은 부자에게 "웬 거지같은 사람이 주인님을 만나러 왔습니다"하고 전했고 부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경사스러운 날 거지가 오다니 당장 쫓아내라"고 일렀다. 문전에서 쫓겨난 현자는 단정하게 외관을 갖추고 다시 잔칫집으로 갔다.

 그 부자는 "아이고 이렇게 누추한 곳에 고매하신 분께서 와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하면서 상석에 모시고 대접했다. 그런데 그는 음식을 먹지 않고 옷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궁금해진 부자는 "왜 드시지 않고 옷 속에 넣으시는지요?"하고 물었다. 현자는 "당신이 초대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 옷이니 내 옷에게나 음식을 먹여야지요"하고 답했다. 그 부자는 그제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외형이라는 허상에 집착한 인간들 사고를 적나라하게 꼬집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잘 먹고, 호화스러운 옷을 입고, 고급 차를 타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가 많아지는 게 현실이다. 몸이라는 외형에 사치스런 옷을 입히고 온갖 장신구로 치장한다.

 이러한 집착이 가져오는 최대 악영향은 사람이나 사물의 근본정신을 보려 하지 않고 겉모양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한다는 것이다. 화려하고 감각적 외형에 빠져 자신답게 살려는 자존심이 결여되는 것이다. 결국 유명한 연예인들 겉모습을 모방하려 애쓰고 진정한 자기 마음과 얼굴, 개성과는 상관없는 자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옛 성인들은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가난함부터 먼저 배우라`고 했다. 외형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 향상이나 만족감, 참된 가치가 결여돼 겉모양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는 타인이 자기에게 관심을 주기를 바라는 잘못된 가치관에서 기인한다. 교만한 말과 꾸미는 얼굴빛보다 진실한 삶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스도교인은 세례성사를 통해 한 줌 흙으로 사라질 물질에서 영적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므로 먼지로 되돌아갈 현세의 것들에 집착하고 과시하지 말아야 한다. 부활을 향한 강한 희망을 가진 우리가 썩어 없어질 것에 애착을 갖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현상과 외형, 체면이나 명분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생각을 크게 전환해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나오는 진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겉모습에 따라 미와 추를 판별하는 세인들에 따르지 말고 인간 내면과 그 지향을 사랑하시어 사람의 인격을 높이신 예수님 방식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로마 8,5-6)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하느님 모상인 인간 존엄이 부활하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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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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