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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 궁금증] 92.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은 누구인가?

신약, 동족은 물론 이방인ㆍ이교도까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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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콥 시몬스 피나스,`착한 사마리아인`, 17세기께, 동판에 유채,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사랑의 응답으로써 자신의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19,19). 여기서 언급하는 이웃이란 어떤 범위까지 사람을 의미하는가?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동족만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레위 19,18).

 이처럼 구약성경에서 `이웃`은 철저하게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치는 단어였다. 당연히 이교도나 이방인은 이웃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같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이웃의 범위가 확대, 적용됐다.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 그를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19,34).

 이웃에 대한 개념은 예수님의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부터 완전히 달라진다(루카 10,29-37 참조). 물론 이웃의 범위 역시 동족은 물론 이방인, 이교도까지 확대된다. 이런 가르침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특정 대상이었던 `이웃`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 됐기 때문이다(루카 10,36).

 성경은 이처럼 일찍부터 이웃에 대한 사랑을 중요시하고 그 개념을 깊이 이해했다. 이웃의 범위 안에 가까운 이웃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은 놀랄 만하다.

 "또한 그분은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신명 10,18).

 다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 대한 추상적 사랑 대신 가까이 있는 이웃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위를 요구하셨다.

 "제 눈으로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으로 보지도 못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 20-21).

 이처럼 이웃 사랑의 계명은 말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써 보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성경에서는 이웃 사랑은 하느님의 행위에 바탕을 둔다(신명 10,18-19).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두 계명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자선을 자기 자신의 칭찬과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마태 6,2-4).

 이웃 사랑은 의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며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비서실 수석비서)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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