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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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33. 기도와 함께 닦아야 할 덕행① 순수한 사랑

순수한 사랑·영적 우정 키워야 기도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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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가 권한 ‘영신적 사랑’은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 폭넓은 사랑이자 자신을 넘어서는 이타적인 사랑이다. 그림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

기도에 동반되어야 할 덕행들

성녀 데레사는 기도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기도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덕행을 닦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기도의 진보를 위한 합당한 삶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평소에 신덕, 망덕, 애덕의 삶을 소홀히 살아가던 사람이 갑자기 기도를 한다고 잘 될 리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으로 가득 찬 사람이 제대로 기도에 몰입할 수도 없습니다. 이기적인 사람, 세속에 집착하는 사람, 교만한 사람, 자기 자신에 대한 주제 파악을 제대로 못 한 사람은 아무리 기도를 해도 커다란 진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남의 험담을 일삼는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 뒤에서 남을 욕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기도하러 성당에 가기 전에 행실부터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기도 그 자체만으로 언급될 수 없고 그에 합당한 덕행이 따라야 합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


성녀 데레사는 기도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순수한 사랑’을 지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진지하게 기도의 진보를 염려한다면, 그 이전에 먼저 주위 사람들과 어떤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 참된 영적 우정은 ‘너’와 ‘나’ 사이에 언제나 ‘그리스도’의 자리를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너’와 더불어서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지향합니다. 따라서 세속에서의 사랑이 오직 ‘너’와 ‘나’만의 배타적인 관계라고 한다면, 영적 세계에서 진정한 ‘영적 우정’은 ‘너’와 ‘나’ 사이에 ‘그리스도’의 자리를 마련하는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함께 그리스도를 나누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진정 기도에 뜻을 둔 사람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영적 우정’입니다.


기도의 장애물인 감각적 사랑

성녀는 사랑을 ‘감각적 사랑’과 ‘영신적 사랑’으로 나눴습니다. ‘감각적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우선 개인적으로 보면, 그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애착함으로써 주님께 드려야 할 마음의 자리를 빼앗기게 하는 것이 감각적 사랑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사제, 수도자, 평신도는 각자 자신의 신분에 맞는 ‘정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결’은 단순히 육체적인 동정만을 지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문제이며 지향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정결’은 ‘나누임 없는 마음’, ‘나누임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 누구 때문에 하느님께 가야 할 내 사랑이, 내 마음이 갈라져 있다면 정결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녀 데레사가 경계한 감각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감각적 사랑이 공동체 차원으로 확산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파벌적 사랑일 것입니다. 성녀는 이를 빗대어 ‘유다의 그림자’라고 할 만큼 증오했습니다. 나와 기질이 맞고 코드가 맞고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고 챙겨주는 끼리끼리의 사랑, 그런 ‘이너 서클’에 들지 못한 사람은 소외시키고 배제하고 적수로 돌리고 심지어 없는 말을 만들어내서 모함하고 매장하는 것, 나와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만이 주도권을 쥐어야 하고 우리 중심으로 공동체가 재편되길 바라는 것, 이 모두가 감각적인 사랑이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녀는 공동체 안에서 이런 질 나쁜 사랑이 커갈수록 서로 불신, 오해,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공동체를 파멸시킨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그런 일이 있거든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다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호되게 야단쳤습니다.



기도의 진보를 돕는 영신적 사랑

이와 달리, 성녀가 권했던 ‘영신적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한 사람만이 아닌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 폭넓은 사랑이자 자신을 넘어서는 이타적인 사랑이고 헌헌장부(軒軒丈夫)의 사랑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진보하는 것을 크게 기뻐합니다. 또한 이 사랑은 사랑하는 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召命)을 실현하길 바라며 그래서 그를 향한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그가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자신을 실현하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그가 성인(聖人)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오직 이 일을 위해 혼신을 다해 기도하고 관심을 갖고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영혼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성화를 위해 무엇이 좋은가, 그가 닦는 덕에 무엇이 보탬이 되는가 하는 데 관심을 가지며, 그가 역경 중에 있을 때에는 인내를 갖고 그 상황을 잘 넘어섬으로써 공로를 쌓도록 격려하고 기도로 힘이 되어줍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이런 참사랑을 손수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그렇게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를 사랑하고 함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영신적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기도생활을 진단하려면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사랑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은 ‘감각적 사랑’과 ‘영신적 사랑’ 둘 중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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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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