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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상징] 2 - 광야

하느님을 애타게 찾도록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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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다 유적지에서 내려다 본 주변의 황량한 광야의 모습.
사진제공=주호식 신부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광야`하면, 오래전 성지순례 중에 순례자들과 시나이 반도의 광야에서 작은 바위를 제대삼아 미사를 봉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미사를 시작하자 근처에 사는 베드윈족 아이들 몇십 명이 우리 주위에 모여들었다.
 이방인을 호기심의 눈초리로 보던 아이들은 우리가 성가를 부르자 자기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크게 따라 불렀다. 나중에는 손뼉까지 치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던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광야에 사는 아이들의 삶이 무척 순박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야라고 하면 우선 황량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척박한 땅, 뜨겁고 건조한 불모의 사막을 생각하기 쉽다. 광야는 죽음과 쇠퇴, 파멸의 땅을 의미한다. 또 광야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굶주림과 타는 듯한 갈증이 존재한다. 무서운 모래 바람과 위험한 독사, 전갈 등이 인간의 생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곳이 광야다.
 그래서 성경은 광야를 사람이 살지 않고 야생 당나귀나 들짐승이 사는 곳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광야의 들나귀처럼 먹이를 찾아서 일하러 나가네"(욥기 24,5).
 구약의 광야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던 장소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는 무섭고 두려운 곳이었다.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호렙을 떠나, 너희가 본 저 크고 무서운 광야를 가로질러, 아모리족의 산악 지방 길을 따라 카데스 바르네아에 이르렀다"(신명 1,19). 이스라엘은 광야를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시련과 정화의 상징이 된다.
 황폐한 광야에는 각종 사악한 짐승이 도사리고 있다. 하느님께 버림 받은 장소인 광야는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기만 한다면 비옥한 풍요의 땅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마침내 하늘에서 영이 우리 위에 쏟아져 내려 광야는 과수원이 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이사 32,15).
 역설적으로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주님께서는 광야의 땅에서 울부짖는 소리만 들리는 삭막한 황무지에서 그를 감싸 주시고 돌보아 주셨으며 당신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다"(신명 32,10).
 신약에서 광야는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준비한 장소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마르 1,4). 이처럼 광야는 예언자로서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장소다.
 광야는 악이 거처하는 장소로도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머무르시며 기도하셨다(마태 4,1-11).
 광야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기에 세상에 숨겨진 곳, 속세를 초월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수도자들은 오랫동안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전심으로 기도와 사색에 몰두했다. 광야에는 안락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거의 없는 황량함이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살이 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고 불평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광야는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가르쳐주고 하느님을 애타게 찾도록 하는 장소다. 나의 광야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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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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