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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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68) 하느님 뜻과의 조화 (32) ‘개방성’,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

반성 없는 회피적 삶은 공허함만 가져와/ 주의를 기울여 주님 원하는 바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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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힘든가. 삶의 의미를 몰라 방황하고 있는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가. 미래의 삶이 불안한가.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는가. 그래서 자살 충동을 느껴본 일이 있는가.

이 모든 문제를 단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원래 이런 기막힌 방법은 돈 많이 받고 알려드려야 하는데, 이곳에 공짜로 그 방법을 공개하고자 한다. 의외로 쉬운 방법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어려운 수학문제가 아니다. 작은 결심, 작은 행동 하나로 단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그 방법은 바로…. ‘개방성’이다. 조금 어려운 현대 영성 신학적 용어를 사용해 표현하자면 ‘형성의 신비에 대한 개방성’이다.

하느님께 나 자신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된다. 개방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반대로 개방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참 많은 사건들을 만난다.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람만 만나지 않는다. 어쩌면 고통의 시간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하느님을 향해 마음만 열면 신비스럽게도 모든 일이 저절로 해결된다. 상황과 사건을 대하는 나의 눈이 달라지고, 입이 달라지고,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달라진다.

그냥 그렇게 하느님께 나를 열어 놓았을 뿐인데, 그 결과는 엄청나다. 세상을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신비에 나 자신을 개방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의 좁은 사고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이기적인 삶, 자기중심적 삶, 오만과 교만의 삶을 살게 된다. 변화를 원하면 개방돼야 한다. 하느님이 일을 하시도록 나 자신을 열어야 한다. 하느님께 개방된 사람은 눈이 오는 날 성당에 가서 눈을 치운다. 나보다도 이웃을 먼저 생각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변화시키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경쟁으로만 인식한다. 그리고 욕심스럽게 누르고 올라서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 사는 이치는 다 그래’라는 말로 합리화하려 한다. 하느님 앞에서 나를 보고, 이웃을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 자신을 개방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쓰셨던 방법을 쓰면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개방했다. 욕심과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뜻을 따랐다. 그 결과가 부활이라는 영광으로 찾아온다.

많은 이들이 대충 머리로 세상을 파악하고, 그 어리석은 판단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늘 오리무중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108번뇌가 106번뇌, 100번뇌로 줄어야 하는데 늘 108번뇌에 머물러 있다. 욕심은 늘고, 삶은 의미가 점점 없어진다.

주변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삶이 과연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찬찬히 뜯어 봐야 한다. “에이, 나는 될 대로 그냥 살래” “인생은 즐기는 거야” “그냥 돈 많이 벌고, 친한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살래” 이런 식의 ‘회피’는 늘 공허함만을 줄 뿐이다. 이렇게 추구하는 행복은 말 그대로 신기루에 불과하다. 늘 허기지고 목마르다. 테레사 성녀께서 영적 성장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주의를 기울임’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나 중심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를 완전히 개방하고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정신적 차원에서의 잘못된 ‘열망’의 에너지를 발휘하지 말고 영적 차원의 참된 ‘갈망’의 에너지를 발휘해야 한다. 정신적 차원의 열망의 에너지는 자기중심적 삶을 낳는다. 영적 차원의 갈망의 에너지는 참 행복의 길로 인도한다. 개방하게 만들고, 모든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인간이 갈망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 하느님은 영감을 주신다. 그 영감을 통해 우리는 참 행복의 씨앗을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은 넓다. 내 몸은 한 평이 채 안된다. 이 작은 몸에 채우면 얼마나 채우겠는가. 문을 꼭꼭 닫아걸고 내 것으로만 채우지 말고, 문을 열어 모든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 우리는 이 신비를 이미 오병이어를 통해 목격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창조하신 것, 그리고 나를 이런 모습으로 창조하신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이렇게 형성해 놓고, 또 형성해 나가도록 만드신 것 자체가 신비다. 이 신비에 나 자신을 개방해야 한다. 그러면 육신 정신 마음이 바뀌고, 세상도 달라 보인다. 개방하지 않으면 나 자신의 어둠 안에 꽁꽁 갇힌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모든 문제의 해법은 개방성에 있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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