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87) 어느 교수님의 순교자 짝사랑

순교자 삶 본받는 마음으로 이웃 사랑 실천 다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한 달에 한 번 ‘주제가 있는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반신자들과 함께 미리 정해 놓은 주제를 갖고 주제와 적합한 성지를 선정하여 순교자들과 하루를 충분히 머물다오는 순례 프로그램입니다.

어느 날, 어느 대학 사학과 교수이며 그곳 성지 관련 교회사를 연구하는 선생님을 급히 만나뵐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리 연락을 드린 후, 함께 순례하는 신자들이 주제에 맞게 순교자들을 잘 만나고 있음을 확인한 다음, 30여 분 정도 짬을 내어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좋은 햇살 아래 교수님을 반갑게 뵌 후, 순교자 관련 중요한 정보와 자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을 하나 드렸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한국교회사 공부가 정말 재미있어요?”

그러자 교수님은 소녀처럼 수줍은 미소만큼이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저는 요즘 선교사들의 서한을 번역하고 있는데, 특히 박해시기 및 박해가 끝난 후 한국에서 어렵게 사목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서한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메고 감동의 눈물이 나요. 모진 박해와 고통 속에서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외국인 선교사들이 오히려 살아있는 저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또 동료 선교사들끼리 어렵사리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보면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말로 표현이 안돼요. 그래서 신부님, 한국교회사 공부는 할수록 뭐라고 할까. 음, 따스한 난로 같아요.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사실 우리는 지금 편안한 세상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은 하지만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는 두렵고 무서워하잖아요. 그런데 한국교회사는 신앙선조들이 모질게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뿐인데도 읽을 때마다 내 남은 한 평생의 삶, 그분들 생각해서라도 좀 더 사랑하며 살고 싶게 만들어줘요. 그래서 한국교회사 공부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더 신나고, 기쁘고, 감동적이에요. 부끄럽지만 제가 우리 순교자들을 진심으로 짝사랑하나 봐요!”

그날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둠이 내리는 어둑어둑한 차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시간은 200여 년 가까이 흘렀지만 ‘오늘은 천주님께 돌아가기 참 좋은 날’이라고 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가거나, 옥사나 아사를 하거나, 아니면 그 밖의 다른 형태의 순교로 믿음을 지키시던 바로 그날의 하늘, 그날의 구름, 그날의 바람이 지금도 어김없이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불쑥, 그 ‘바람’이 제 마음 안으로 들어와 저를 ‘순교의 삶’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을 짝사랑한다”던 교수님의 말씀과 함께, 한낱 감상에 젖은 마음의 순교가 아닌, 날마다 ‘순교하기 좋은 마음’으로, 내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다독였습니다.

문득 혼자 다짐해봅니다.

‘이번 다짐만은 꽤 오래 갔으면 좋겠다.’

어쩌면 하느님이 저를 부르시는 그날까지도 가능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4-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30

잠언 15장 17절
사랑 어린 푸성귀 음식이 미움 섞인 살진 황소 고기보다 낫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