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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91) 어머니!

멀리서 뒷모습만 보고 부모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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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방에 있는 수도원에 행사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때마침 그 지역이 부모님이 사시는 곳이라 오랜만에 집에 가서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드렸습니다. 부모님에게 자식은 언제나 소중한 보물인 듯 부모님은 저를 귀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부모님이 천 년을 아니, 만 년을 사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점점 연세가 들어 예전만큼은 아닌 얼굴이지만, 그래도 시골 어촌마을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며 부지런히 사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제 자신의 건강이 더 걱정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꼭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살 언제 뺄 거냐고!”

에고….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를 드린 후, 다시 그 수도원으로 돌아가 교구 주교님과 교구 신부님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준비된 아름다운 행사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날 저녁, 행사에 수고했던 형제들과 회식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 수도원 원장 수사님과 몇몇 분들이 저와 함께 자리를 하게 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원장 수사님이 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석진아, 오늘 축복식 때 우리 어머니가 오셨어. 내가 말씀을 안 드렸기에 어머니가 오시는 줄도 몰랐지. 그러다가 오전에 행­사가 시작되기 전, 어느 연세 많으신 분이 두리번두리번 어딘가를 찾으시는 거야. 그분의 뒷모습을 보고 찾는 곳을 안내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혹시 어디를 찾으십니까?’하고 물었지. 그런데 어르신이 고개를 돌리시는 순간, 그분이 우리 어머니였던 거야. 우리 어머니! 나는 어머니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분이 내 어머니라는 사실을 몰라본 거지. 내가!”

원장 수사님은 그날 저녁, 그 식탁에서 그 이야기를 대여섯 번 되풀이하면서 말했습니다. 얼마나 속으로 죄송스럽고 미안했으면 그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그러자 다른 신부님께서 웃으시며 “야, 강석진. 이거 가톨릭신문에 쓸 내용감이다! 이 불효막심함을 글로 좀 써라, 써!”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 수사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수도생활을 했던 저로서는 그분이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살면서 좀처럼 당신의 가족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던 그분. 그러면서 언제나 가난한 노동자들의 인권과 세상 불의를 위해 온 삶을 걸고 투쟁하듯 그렇게 살아왔던 그분. 성격이 대쪽처럼 날이 서 있어 때로는 다가서기조차 어려웠던 그분이었는데,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특히 어머니의 뒷모습을 못 알아본 이야기를 몇 번씩 하며 한숨을 쉬는 걸 보면서 속으로 ‘아, 이 분도 늙어가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머니, 그 존재에 대해 애잔한 마음이 드는 모양입니다. 모든 이들의 가슴 한 구석에 화석처럼 새겨져 있는 단어 ‘어머니’. 그러면서 문득 생각해 봅니다. ‘나는 멀리서 우리 어머니의 뒷모습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순간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만 하느니 어머니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어 전화를 드려 봅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김없이 또 한마디 하십니다. “그래, 나는 잘 있다. 근데 그 살은 도대체 빼고 있냐?”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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