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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95) 장인(匠人)과 학벌

학벌지상주의 대한민국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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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 중에 메밀로 별미 음식을 만드는 분이 있습니다. 특히 메밀정식의 국물 맛은 어찌나 맛깔나게 내는지 그 누구도 그분 맛을 흉내내지 못하리라고 확신할 정도입니다. 그 집에서 메밀정식을 먹고 나오면 기분마저 상쾌해질 정도입니다.

일 또한 성실하게 하시어 일 년 아니, 7~8년이 지나도 그 맛이 변하지 않아 그분 식당에는 많은 단골손님들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날도 메밀정식이 생각나서 저녁에 동창 신부님들과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반갑게 맞아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울적해보였습니다. 손님도 뜸하고 그래서 ‘어디 아프시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님은 “신부님, 사실 제 학력이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어요. 홀어머니 고생시키는 것이 싫어서 중학교 졸업하고 식당에 취직해서 기술을 배웠지요. 청년이 돼서는 외국 가서 혼자 독학해서 그 나라 말도 배웠고, 그곳의 유명한 요리 기술자 밑에 들어가 고생하면서 음식조리기술을 배워 지금 이렇게 살고 있어요. 뭐, 대단하지는 않지만 식당 문을 열어서 좋은 분들에게 맛난 음식을 정성스럽게 대접해 드리는 것이 저의 천직같아 좋아요. 한 달 수입의 10는 꼭 장애인 시설에 기부하기도 하고. 그런데 제가 중학교밖에 안 나온 것이 흠이 되나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혹시 오늘 힘든 일 있으셨어요?”

이야기인 즉, 오후에 손님으로 그 형제님 가족사를 알고 있는 동네 분들이 손님으로 온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름 신경을 써서 음식 준비를 해드렸는데, 그분들이 무슨 연유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행상하며 너를 키운 어머니께 잘 해드려야 한다. 장사 좀 된다고 거드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등의 말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그분들이 형제님이 중학교만 졸업한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 먹고 살기 힘든데 기회 잘 잡았구나’하는 말을 하더랍니다.

그러자 형제님은 그만 화가 나서 ‘당신들에게 장사 안 하니 먹던 음식 두고 그냥 나가라’하고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그 다음 상황은 안 봐도 뻔합니다.

“신부님, 중학교만 나온 사람은 그 자체로 세상의 실패자나 낙오자나 됩니까? 나는 비록 중학교만 나왔지만 이 분야에서 나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외국어 하나도 누구 못지 않게 잘 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제가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며 살아왔는지…. 지금은 우리 어머니 효도관광도 자주 시켜드리고, 때가 되면 외식도 시켜드리면서 나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나온 사람이 이런 음식 장사를 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제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해서 일확천금이라도 받은 사람 취급하는 것이 너무 속상합니다.”

문득, 학벌 지상주의 대한민국 현실의 한 단면을 보았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하소연하는 그분 모습에 제가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상은 학벌 높은 몇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장인(匠人)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삶으로 굴러가는 것이거늘! 학벌의 편견, 눈물겹게 슬픈 우리의 자화상 같았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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