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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97) 묵상과 현실 ②

실천 없이는 귀한 깨달음도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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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하산한 후에 무슨 일 있으셨어요?”

제 걱정스런 질문에 신부님은 손사래를 치며 “평소 제 생각이 부족해서 유혹에 넘어가서…”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혹이라뇨? 혹시 광야에서 유혹받으신 예수님처럼 유혹 체험도 하셨어요?”

저의 말에 웃으시던 신부님은 “내 몸에 배인 그릇된 습관들이 스스로 유혹을 만들어 거기에 스스로 걸려 넘어졌어요. 그날 시나이 산에서 내려온 후, 내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어요. 그때 일정 안내자는 곧바로 식당에 가서 아침식사를 한 후, 각자 방에서 씻고 다음 일정지로 출발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식당으로 갔더니 글쎄, 식당 가득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찌르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과 동시에 입맛이 떨어지더군요. 그래서 그냥 물 한잔 마시고, 내가 묵은 방으로 들어갔지요. 사실 우리가 묵은 곳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가격이 비싸 쉽게 투숙하지 못하는 곳인데, 숙소 및 세면장 시설이 너무 형편없게 느껴진 거예요. 욕조에 물을 좀 받아서 몸을 담그고 싶은데 그런 시설은 아예 없고, 샤워 부스도 엉망이고 물도 잘 안 나오고, 비누와 샴푸 역시 어디서 주워온 것 같았어요. 에어컨도 잘 안 돼 땀은 절로 흐르고. 그러면서 혼자 불평불만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씩씩거리다 숙소 밖으로 나오는데, 함께 순례하는 분들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내 앞을 지나면서 나에게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오늘 새벽, 신부님이 기쁜 얼굴로 시나이 산에 올라가는 모습이 큰 감동이었어요’하는 인사말을 하는데, 순간 뭔가에 한 대 쿵-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어요. 정말 그날 새벽, 시나이 산에 올라가면서 묵상 중에 사제로 좀 더 잘 살고 싶고, 계명의 본질을 더 잘 따르고 싶고, 바로 내가 서 있는 곳을 언제나 하느님 만나기 좋은 내 삶의 시나이 산이라 생각하며 살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는데,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서…, 휴, 이내 곧 내가 원하는 편리함이 충족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투덜거리기 시작하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내 모습!

그래서 그날 이후 나에게 ‘시나이 산’은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묵상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됐어요. 살면서 감상에 젖는 묵상을 잘하고, 쉽게 내 자신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보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사소한 불편의 유혹에 걸려 쉽게 넘어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최고의 묵상은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그 묵상의 내용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함께 서 있는 이들과 삶으로 나누기는…, 아이고,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지요.”

저 역시 수도자로, 또 사제로 살면서 많은 묵상을 하면서 그곳에서 영적 깨달음이 주어질 때는 그렇게 달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강의 혹은 강론을 통해 나눌 때는 주변 분들이 저를 꽤 훌륭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기분마저 달콤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삶으로 살 때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는 합리화를 통해 쉽게, 태연하게, 잊어버립니다. 삶을 실제로 사는 것이, 삶을 머리로 잘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 깨닫기만 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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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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