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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99) 사람의 전부를 다 알지 못합니다②

자만하다 돼지 오물에 빠질 뻔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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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철이가 헤엄을 곧잘 치고, 물 속에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러다 혹시나 정말 문어를 잡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짐짓, 바다 속 문어를 손으로 잡는 기술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병철이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병철이가 문어 두 마리를 거뜬히 잡아온 것이었습니다.

병철이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고, 또 병철이는 산간지방에 살고 저는 바닷가 쪽에 살기에 산간지방 사람들은 바다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내심 성찰컨데, 제가 손으로 문어를 잡지 못하기에 당연히 병철이도 문어를 잡지 못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병철이에 대해 내가 알고 싶은 부분만 알고 있으면서 전부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바다의 왕자 코난이 바다괴물을 무찌른 그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병철이는 우리 앞으로 와서 태양에 검은 빛이 반짝거리는 아직 살아있는 싱싱한 문어 두 마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동창 신부님들은 박수를 쳤고, 발 빠른 신부님은 곧바로 초고추장을 사러 가게에 갔다 왔으며, 우리는(아니, 저만 빼고) 병철이에게 잡힌 불쌍하면서도 싱싱하게 생긴 문어를 맛있게 먹어 치웠습니다.

문어를 맛나게 먹던 신부님들은 계속 박장대소를 하며 병철이에게 “남자들 사이에서 내기는 정말 중요하지. 약속하면 ‘강 약속’이라고, 강 신부는 약속을 정말 잘 지켜! 그러니 휴가 기간 내내 병철이 네가 강 신부에게 시킬 것이 있으면 마음껏 시켜. 사나이 중에 사나이 강 신부는 뭐든 다 해 줄 거야!”

먼 바다를 보면서 ‘어찌 이런 일이…’하며 한숨만 쉬고 있는 저에게 병철이는 “우리 각시랑 이야기해보고 내일부터 신부님 시킬 것들을 전화로 알려 드릴게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이 깊도록 동창 신부님들은 ‘병철이와 저의 내기’, ‘문어 두 마리를 거뜬히 잡아온 병철이’의 이야기를 하고 또 했습니다. 그리고 휴가 내내 병철이의 소원은 모조리 다 들어 주라며 약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내심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병철이 하는 일이 돼지를 키우는 일이기에 혹시나 그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병철이 아내로부터 웃겨 죽을 문자를 받았습니다.

“신부님, 어제 물 속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병철이는 자기가 이기면 강 신부님 휴가 내내 돈사의 돼지 오물을 치우는 일을 맡기겠다고 결심했대요. 그런데 문어를 잡은 후, 신부님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기에 내기는 없던 것으로 하겠답니다. 하하하, 일주일 내내 돼지 응가(?)를 치울 뻔한 강 신부님!”

자신이 누군가와 친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착각에, 타인의 장점이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일어난 좋은 경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날 이후 그 어떤 내기도 하지 않지만,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조심스럽게 인식하고자 노력하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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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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