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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25) 성 암브로시우스 ①

평신도에서 주교가 된 당대의 대 신학자, 법관의 길 걸으며 인기와 존경 한몸에 받아, 신자들의 끊임 없는 요청에 주교 직분 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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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교부들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낸 성인을 꼽으라면 성 암브로시우스(St. Ambrosius. 축일 12.7)를 들 수 있다.

340년 독일의 트리엘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났다. 두 형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직으로 진출했고, 암브로시우스는 가톨릭 신자인 재판소장(프로부스) 밑에서 일을 배워 법관의 길을 걸었다.

암브로시우스는 죄인을 대할 때, 엄한 재판관으로서가 아니라 자애로 충만한 모습으로, 정의에 입각한 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곧 큰 인기를 얻고 존경을 한 몸에 받게됐다. 결국에는 총독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때, 암브로시우스에게 있어서 중대한 삶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374년 밀라노의 주교 아우첸시우스가 서거하자 그 후임 선출이 매우 혼란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당시에는 아리우스 이단이 성행했는데, 그 교단의 교직자들이 가톨릭 주교의 임명을 방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밀라노는 곧 폭동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암브로시우스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격분한 군중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직접 시위 현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군중들을 설득했다. 이때 한 아이가 외쳤다.

“암브로시우스님이 주교가 되어야 한다! 암브로시우스님이 주교가 되어야 한다!”

소리를 들은 군중들은 마치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은 듯, 이구동성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암브로시우스 주교님! 암브로시우스 주교님!”

당황한 암브로시우스는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무리한 요구는 그만두라며 군중을 진정시켰다. 왜냐하면 당시 그는 세례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직자가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중들은 멈출 줄 몰랐다. 거듭 주교 취임을 요구하며, 점점 더 소란을 피웠다. 이에 암브로시우스는 친구 집으로 피신해 군중들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군중들은 숨어있던 암브로시우스를 직접 찾아내 다시 주교직에 오를 것을 요청했다. 암브로시우스가 얼마나 군중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세는 기울어졌다. 결국 인근 지역의 주교들과 밀라노 교구의 사제들도 암브로시우스에게 주교직을 권유하기에 이른다.

이에 성인은 어쩔 수 없이 주교직을 수락했다.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암브로시우스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당연히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해선 자세히 알고 있었다. 평신도로서 신심도 남달랐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교리를 받은 그는 세례와 신품성사를 잇달아 받고, 374년 12월 7일 밀라노 주교직에 올랐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암브로시우스다. 그는 주교직에 오르자마자, 모든 열정을 다해 직무에 임했다. 특히 기도, 교리연구, 자선사업에 전념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침묵을 지키며 끊임없이 단식을 실천했으며, 기도로 날을 보냈다. 특히 순교자들을 공경했으며, 신학에 대한 열정으로 학문에 힘썼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까지도 가톨릭 신학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대 신학자가 되었다.

암브로시우스는 또한 신자들에게 교리에 대한 이해를 북돋우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주일에는 반드시 강론을 했다. 가는 곳마다 그의 가르침을 듣기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선 실천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선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주었다. 당연히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몰려왔다.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넓은 마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죄인에게는 깊은 애정과 친절로 대했으며, 주어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교도들의 회개를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했다. 성녀 모니카가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눈물로 청하자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안심하시오. 그런 눈물을 가진 어머니의 아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예언은 적중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후 암브로시우스와의 대화를 통해 회개하고 훗날 위대한 가톨릭교회의 성인이 됐다.

하지만 영광은 고통을 전제로 한다. 암브로시우스 성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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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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