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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28) 성 아우구스티누스 ①

죄인의 회개를 상징하는 빛의 증거자, 모친 성녀 모니카 노력에도 타락의 삶 살아, 수도생활의 고귀함에 감동, 신앙의 길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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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들을 구하러 왔기 때문이다.”(마태18,11)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9,13)

성경 말씀은 죄인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선례도 많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들이 죄와 타락의 구렁에서 빠져나와 회개했고, 그 큰 은총 속에서 머물렀다. 그중에는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들도 있다. 죄인의 회개를 대표하는 분이, 하느님의 큰 은총의 빛을 증거하는 대표적인 분이 바로 성 아우구스티누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의 풍성한 은총의 힘으로 죄악을 성덕으로, 어둠을 광명으로, 놀라울 만한 대전환을 이뤘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결심 여하에 따라 멸망에서 소생되어 광명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11월 13일, 북 아프리카의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트리치오는 이교도인이었다. 성질이 매우 급하고, 명예와 재산 등 현세적 사물에만 흥미를 느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는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늘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헌신과 눈물 등 어머니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하지만 사람은 선보다 악에 기울어지기 쉬운 존재자이다. 어머니의 엄격한 권고도 소용이 없었다. 학업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자만에 빠졌고, 곧 타락의 길을 걸었다. 16세에 한 여인과 함께 생활하며 아데오다토라는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명예와 세속적 욕심에 사로잡힌 그는 마치 죄를 향해 질주하는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 같았다. 게다가 373년경에는 마니교라는 이단에까지 빠진다.

그러던 중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 가장 친한 친구가 불의의 죽음을 당하자, 죽음문제에 대한 번민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후 이곳 저곳을 떠돌게 되는데, 결국 밀라노에 가게 된다.

당시 밀라노의 주교는 암브로시우스 성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유명한 웅변가라는 소문을 듣고 그의 강론을 자주 들으러 갔다. 처음에는 단지 호기심에 불과했으나 차츰 암브로시우스에게 매료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아직 단순한 호감의 범주를 넘어서진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386년 가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리비아에 사는 은수자들, 특히 성 안토니오의 삶에 대해 듣는다. 그리고 수도생활의 고귀함에 대해 감동을 받게 된다. 당시 아우구스티누스는 결혼과 명예, 돈에 대해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던 때였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해 살려는 소망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번민에 사로잡혀 정원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들어서 읽어보라! 들어서 읽어보라!”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방으로 돌아와 무심코 성경을 펴 들었다. 그리고 읽어 내려갔다. 그곳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13,13-14)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대해(大海)와 같은 하느님의 은총이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당장 개종하고 가톨릭 신앙인이 된다. 가장 기뻐한 것은 33년간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 모니카였다.

387년 부활 축일 전야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들 아데오다토와 친구 알리피오와 더불어 암브로시우스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평화와 기쁨이 그의 마음속에 깃들었다.

평생 소원이던 아들의 회개를 지켜본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열병으로 선종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 또 아들 아데오다토도 잃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모든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보속하는 마음으로, 남은 삶을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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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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