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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30) 성 아우구스티누스 ③

회개 통해 완벽한 신앙의 모범 되신 성인, 세례받고 완전히 달라져… 사제·주교 서품까지, 신학·수도생활 관련 집필로 하느님 영광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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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이제 은총의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는 사막에서 고행하는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그는 생각한다.

“아! 나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나만큼 머리가 똑똑하지도 않은 사람들도 모든 노력을 다해 천국의 의미를 묵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육욕의 노예가 되어있지 않은가. 이 무슨 꼴인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권력이 높아도,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서 학식을 쌓은들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의 삶은 동물만도 못하지 않는가.”

문제는 아직도 그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을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 진정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한 걸음 내딛기’에는 은총이 필요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은총을 받아들일 마음과 귀, 눈이 있어야 한다. 이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그 눈과 귀, 입이 열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386년의 일이었다. 번민에 사로잡혀 정원을 산책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어서 읽어보아라!”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심코 성경을 펴 들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13,13-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지만 때때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33세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까지 모든 죄를 회개하고, 부활 대축일 전야에 암브로시오 주교를 통해 세례성사를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천국에서 수많은 천사들이 기뻐 환호한 순간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삶의 표양은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신자들이 너도나도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직의 길을 걸어갈 것을 원했다. 과거의 잘못은 문제가 안됐다. 지금 현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신앙의 모범이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제품을 받았고, 주교직까지 받게 된다. 물론 33년간의 방탕한 생활이 한순간의 회개로 모두 바로잡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선 내면을 갈고 닦는 수련의 땀이 필요하다. 잘못된 과거의 삶 속에는 더러운 이끼가 가득하다. 무의식의 저층에 짙게 깔려있는 이러한 때를 닦아내야 한다. 이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영성의 3단계 안에서 보면 정화, 조명, 일치의 단계중 첫번째 단계인 정화라 할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정화의 삶은 실로 피눈물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면형성에서 더 나아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상호형성을 위해서도 노력한다. 그는 교구 사제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영적 성장의 길을 걸었다. 더 나아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 형성의 차원에서 저술 작업에도 매진했다. 그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과거에 잘못 살아왔던 삶안에서 보물을 끄집어 내며, 하느님의 은총을 증거했다. 고백록을 비롯해 수많은 철학과 신학서적을 집필했다. 그가 평생을 쌓아올린 지적인 능력이 신앙안에서 빛이 나는 순간이다. 그의 신학과 수도생활에 대한 집필은 훗날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십계명’의 분류도 그에 의한 것이다. 그는 회개와 깨달음에 이어 지덕(知德), 지덕(智德), 절제의 덕, 초탈의 덕 등 자신의 내면형성에 주력했고, 또 상호형성을 위해 매진했으며 결국에는 세계형성이라는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는 결국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회개는 어려운 일이다. 머리나 마음으로는 할 수 있지만, 영혼을 움직이는 회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희망을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서 본다. 어렵지 않다. 하느님은 늘 은총을 풍부하게 내려 주신다. 우리는 그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영적인 안테나만 높이 세우고 있으면 된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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