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43) 용모에 명랑함을…

행복한 삶 위해 ‘명랑한 표정’ 짓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현실요법과 선택이론’이라는 현대 심리학의 한 분야에선 ‘선택’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중에 흥미로운 예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행복하기에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웃기를 선택함으로써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불행하다, 삶이 너무 지친다, 인생이 즐겁지가 않다’ 라며 기진맥진해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내적 마음 상태를 긍정적으로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웃기’를 선택함으로써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올 수 있기 위해서 나의 얼굴, 즉 ‘용모’를 한 번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내 얼굴이 과연 ‘웃음’을 선택함으로써 행복이라는 것이 찾아 올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바로 그 명랑한 용모’인지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명랑한 얼굴, 표정을 짓는다’ 혹은 ‘참으로 명랑한 아이로구나’하면서 ‘명랑’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명랑’의 사전적 의미는 ‘얼굴 모양이 흐린데 없이 밝고 환함 혹은 유쾌하고 활발함’입니다. 사실 ‘명랑한 표정’은 행복을 찾아오게 합니다. 얼굴이 밝고 환하고, 유쾌하고 활발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어느 누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겠으며, 그러한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면, 더불어 행복이 어찌 찾아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거울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날 잡아 하루 종일 ‘명랑’한 모습을 지어 보았습니다. 외모와 관계없이 ‘명랑’한 표정은 만국 공통의 행복을 나누는 표정이라 그랬는지, 하루를 즐겁게 지내기 참 좋았습니다. 스스로에게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고, 만나는 이들 역시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명랑한 표정은 이내 전염이 되어, 대화를 나누는 모든 이 역시 대화 주제가 다를지언정, ‘명랑’한 얼굴 때문에 대화 내용 역시 ‘명랑’한 내용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용모에 명랑함’을 갖추었더니, 명랑한 하루가 그냥 펼쳐졌습니다. 동시에 그날 하루를 돌아본 순간 나의 하루가 참으로 행복했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돈 드는 일도 아니었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지금 함께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 ‘명랑’한 표정을 짓기를 선택하고, ‘용모에 명랑함’을 갖고 살아 보면 어떨까 합니다. 당장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행복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 하루, 하루를 자신의 삶에 잘 쌓고 간다면, 자신도 모르게 행복도 차곡차곡 쌓여나갈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5-1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8

시편 22장 20절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멀리 계시지 마소서. 저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