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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32)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②

확고한 신념으로 이단으로부터 교회 지켜, 신앙 자유 후 ‘도나투스 이단’ 등 이단자들 난립, 42세에 주교 돼… 사명감으로 정통교리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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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여년 전, 하느님께서는 치릴로를 이 땅에 탄생시키시면서, 그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셨을까. 치릴로는 74년의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세상에 보내주신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실현해 나갔을까.

내면형성을 위한 토대는 이미 잘 마련되어 있었다. 치릴로가 살았던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수도생활과 신심생활의 전통이 강했던 곳이었다. 치릴로는 이러한 수련생활을 하는 수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와 이 땅에서 실현시켜야 할 자신의 사명, 하느님께로의 순명을 터득했을 것이다. 특히 그는 예루살렘 요한 주교와의 만남을 통해 신학적 교육 및 영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결국 치릴로는 청년 시절부터 육신적이고 지성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영적인 건강까지도 잘 닦으면서 생활을 하셨던 분이다.

이 내면 형성의 과정을 거친 이후 42세 때 비로소 주교가 된다. 25세부터 42세까지, 17년의 준비기간을 통해 이제 본격적으로 하느님의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세례를 받는 것도 지극히 행복할 일이고, 사제로 서품되는 것도 행복할 일인데, 주교가 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을까. 실제로 영적인 차원에서 볼 때 주교직에 오른다는 것은 지고의 행복에 이를 수 있는, 참으로 축하하고 함께 행복해할 일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인간적 면에서만 볼 때 주교가 되는 것은 그리 행복한 일이 아니었다. 주교가 된 이후 30여년의 삶은 사실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당시는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 때였다. 그래서 박해의 고통은 없었다.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전교를 하고 싶으면 전교를 해도 됐고, 영성생활을 진하게 하고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됐다. 하지만 세상에는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따라오는 법이다.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다 보니 이단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치릴로 주교는 주교가 되기 전까지 쌓았던 내면형성을 상호형성의 단계로 발전시킨다. ‘나’뿐만 아니라 ‘너’의 형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안타까움, 죄와 오류로 가득찬 세상을 바라보는 고통스러움 속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이단자들의 상호형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확고한 정신으로 한 번도 좌절에 굴하지 않고, 30여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 교회를 지켜내고 교우들을 지켜냈다.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3세기 중엽에 생겨난 도나투스 이단이다. 이들은 로마의 박해시기 때 잠시 배교했던 신앙인들이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다. 작은 흠만 있어도 신앙인의 자격을 상실한다고 주장했다. 박해의 고통 속에서도 경건하게 신앙을 지켜온 거룩한 ‘우리들끼리만’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로마의 박해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배교를 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나약함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죽이겠다는 데 누가 배교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배교는 나약한 인간 본성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박해시기에 교회를 잠시 등졌던 이들이 박해시기가 지나자, 눈물로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오려고 했다. 당연히 교회는 이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예수님께서도 탕자의 비유를 통해, 회개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감싸 안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도나투스 이단은 교회로 돌아오려는 이들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했다. 오히려 엄한 형벌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박해 때 마음을 돌린 이들은 교회로 돌아올 자격이 없다고 했다.

도나투스 이단의 말대로라면 오늘날 우리들도 자유롭지 않다. 드러내 놓고 배교를 하지는 않지만, 마치 배교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로는 하지 않지만, 마치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렇게 나약한 인간에게 엄격한 신앙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교회에 남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나약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무한히 잘못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힘을 주셨다. 바로 용서의 힘이다.

치릴로 주교는 도나투스 이단에 강하게 반박했다. 그리고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그렇게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고,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전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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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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