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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34) 성 베네딕토 ①

초기 교회 수도자와 하느님의 중재자, 최초로 수도회 공동생활의 규정·기틀 확립, ‘수도회의 시조’라 불려… 기도·묵상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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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얼굴을 직접 바라본 사도들과 바오로 사도를 제외하면, 베네딕토 성인(st. Benedictus, 축일 7.11)은 성인 중의 성인이다. 대 성인(大 聖人)이다.

베네딕토는 수도회 공동생활의 규정을 처음으로 틀을 지은 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을 수도회의 시조(始祖)라고 부른다.

물론 안토니오가 베네딕토보다 먼저 이집트에서 흩어져 있던 독수자와 은수자들을 모아 공동 수도생활을 했지만, 그때는 아직 공동생활 규칙이 명문화 되지 않았던 때였다. 이후 안토니오의 모범에 따라 많은 이들이 사막이나 산으로 가서 수도생활을 했는데, 정해진 규칙이 없다보니 생활이 중구난방으로 제각각 이었다. 일부 수도자들의 경우, 애초의 결심을 잊고 타락의 늪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뒤(해방된 뒤) 광야에서 우왕좌왕했을 때 하느님께서 십계명을 내려주신 것처럼, 수도자들에게도 법이 필요했다. 수도생활을 통해 일상에서 탈출은 했지만 나약한 인간인 만큼 마음을 바로잡아 주는 틀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처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의 중재자가 모세였다면, 초기 교회 당시 수도자와 하느님의 중재자는 베네딕토였다.

성인은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의 농촌도시 누르시아(Nursia)에서 태어났다. 농촌이긴 했지만, 성인 가정은 약간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수도 로마에 유학을 가게 되었다. 로마로 향하는 베네딕토의 마음은 들떠 있었다. 학문과 신앙의 중심지 로마에서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열의는 로마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실망감으로 바뀌게 된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도 500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조선왕조도 그렇지만 500년이라는 시간은 자칫 나태와, 이로 인한 쇠퇴를 불러올 수 있는 긴 시간이다. 당시 로마도 그러한 경향이 팽배했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나태와 향락의 기풍이 만연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다. 베네딕토는 절망했다. 환경만큼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것도 없다.

4년 전쯤 한 교우와 상담을 한 일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딸이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데도 강제로 노래방 등을 데리고 다녔고, 술을 마시게 하고 심지어 환각제까지 먹였다. 아이를 만나 보았더니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래서 분위기를 바꿔 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서울에 가서 다른 공부 환경에서 잠시 지내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아이는 이후 서울에서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한달 동안 지냈다. 한달 후 돌아온 아이는 눈빛부터 달라져 있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공부하는 분위기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의 일에 매달리다 보면 삶의 의욕도 생기기 마련이다.

베네딕토도 이러한 효과를 위한 것이었을까. 로마의 환경에 실망한 베네딕토는 엔티페라는 곳으로 공부하는 장소를 옮겼다. 이곳에는 적은 수의 사제들이 경건한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제 환경이 바뀌었다. 베네딕토는 만족했다. 매일 사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묵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베네딕토 성인이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기적의 내용은 여기에 적지 않는다. 어쨌든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당연히 이들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몰려들지 않으면 소문을 억지로 내서라도 사람들을 불러 오려고 난리다. 왜 기적을 몰라주느냐며 목에 핏대를 올린다. 교도권에 대한 반발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베네딕토와 동료 사제들의 반응이 의외다. 이들은 기적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을 고통으로 여겼다. 베네딕토와 동료들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없는 산중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꼭꼭 숨었다.

기적을 행하고 입단속을 시키신 예수님을 닮았다. 요즘 한국교회에는 “나를 통해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며 떠드는 사람이 있다.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도 많다. 예수님을 닮지 않았다.

베네딕토의 소재지를 알고 있었던 사람은 로마노(Romanus) 수사 한 명 뿐이었다고 한다. 로마노 수사는 가끔 자신이 먹기에도 부족한 빵을 떼어 베네딕토에게 주었다고 한다. 베네딕토는 그 빵 한 조각 한 조각을 감사히 먹으며, 오로지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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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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