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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51) 성 토마스 모어 ②

내적 성장 위해 하느님 섭리 잘 깨닫고 따라야, 종교 쇄신·분열 시기 한가운데 선 성인, 진리·복음 묵상, 작품 「유토피아」에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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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의 영성과 그 삶 안에서의 형성적 신비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당시 시대상황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그래야 토머스 모어 영성의 진수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11세기 들어 교회는 여러 가지 부족한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와 반성에 대한 촉구가 교회 내부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2세기와 13세기에 걸쳐서 탁발 수도회 등이 잇달아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주님에 뜻에 맞는 겸손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으며, 실제로 모범을 보였다.

그런데 교회 내부로부터의 이러한 쇄신 운동과 달리 아예 교회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일어나는데 이것이 소위 종교개혁(종교 분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핵심에 있던 루터(Martin Luther)는 독일에서 1483년에, 츠빙글리(Ulrich Zwingli)는 스위스에서 1484년에, 칼뱅(Jean Calvin)은 프랑스에서 1509년에, 성공회를 일으킨 헨리8세(Henry Ⅷ)는 영국에서 1509년에 각각 태어났다. 토마스 모어가 1478년에 태어난 사실에 비춰볼 때 토마스 모어는 격동의 시기 한 가운데에 서 있었던 셈이다.

사회적으로도 당시 세계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당시 국가와 교회의 마찰은 극에 달해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 등 수많은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이러한 복잡한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교황이 로마가 아닌 프랑스 아비뇽에서 1309년부터 1377년까지 68년간 체류하는 일도 일어나게 된다.

토마스 모어의 삶은 이러한 복잡한 시대 상황 한가운데에, 혹은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우선한다. 당시 국가와 종교가 그랬다. 종교나 국가가 자칫 잘못된 길을 걷게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뜻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오만한 모습으로 생활 한다면 이는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이다.

교회와 국가의 역할 중 중요한 하나는 모든 인간이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살도록 봉사하고 인도하는 것이다. 서로 간에 권력다툼과 소유욕에 빠져서 분쟁과 갈등을 지속한다면 그것은 본분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토마스 모어가 선택한 삶의 길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할 길을 유추해 낼 수 있다. 하느님께서 혼돈의 시기에 토마스 모어를 섭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또 하느님은 토마스 모어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했을까.

인간은 ‘만남’을 통해 성장한다. 토마스 모어도 마찬가지다. 그는 21살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삶을 살았는데, 그 해에 12살 연상의 네덜란드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를 만난다. 이 만남은 토마스 모어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도약을 가능케 한다. 새롭고 높은 시야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10대 후반에 벌써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학식을 갖추었던 에라스무스는 훗날(1509년) 가톨릭 교회 성직자들의 위선과 교회의 부패를 풍자한 유명한 「우신예찬」(Encomium Moriae, 愚神禮讚)이라는 작품을 쓰는데, 이 작품을 집필한 곳이 바로 토마스 모어의 런던 집이다.

토마스 모어는 이러한 에라스무스와 교류하며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진리와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묵상을 했을 것이며, 이는 자신의 작품 「유토피아」(utopia)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유토피아에서 엿볼 수 있는 토마스 모어의 이상향에 대한 열정은 온화하고 열심한 신앙생활에 바탕한 것이었다. 특히 그는 가정 안에서 대단히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매일미사에 참례했으며, 식사 때마다 늘 성경 구절을 읽었다. 아내 및 자녀들과의 대화도 대부분 성경에 관한 것이었으며, 특히 손님을 극진히 대접했다. 내면 형성이 상당히 잘 되었던 분이라고 볼 수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내면 형성이 잘 되어야 세계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법이다.

큰 일,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나 자신부터 내면 형성을 잘 해야 한다. 우리 각자의 내면적 영성을 갈고 닦는 것이, 하느님께서 미리 우리 마음 안에 형성되도록 마련하신 섭리를 잘 깨닫고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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