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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67) 십자가의 성 요한 (4)

캄캄한 ‘어둔 밤’ 신앙의 작은 빛 찾기, 하느님이 조종하는 수동적 정화의 삶 통해, 완전한 합치·황홀한 관상 경지까지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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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모르고 교회를 모를 때, 교회 밖에서 생활할 때는 하느님을 볼 수 없고 느끼기도 힘들다. 캄캄한 밤이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며 참 신앙의 소중함을 알고 그 참 신앙을 위해 조금씩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서서히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 만나는 빛은 온전한 빛이 아니라 아직은 희미한 빛이다. 형성하는 신적 신비를 깨닫기에는 아직도 어둡다. 과거의 습관에 아직 너무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통해 능동적으로 자신을 정화시키는 삶을 성취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산다고 해서 그것이 영성의 최고 단계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됐다. 그보다 더 높은 단계가 있다. 그것이 바로 ‘수동적인 정화의 삶’이다.

수동적 정화의 삶은 하느님께서 직접 조종을 해 주시는 것이다. 직접 변형을 시켜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에 의해 감각이 변형되면 보는 눈이 바뀌고, 말하는 입이 달라지고, 만지는 모든 물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눈을 맘대로 딴 곳으로 돌리지 못하고, 입을 마음대로 벌리지 못하고, 손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된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완전하시고 빛나시는 분인지 알게 되면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함부로 눈 돌리지 못한다. 내가 하는 눈짓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짓이고,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는 말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사물 하나를 보더라도 영적인 차원에서, 영적인 눈으로 보셨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세상 만물에 담겨 있는 형성하는 신적 신비의 섭리를 보았다. 자연과 이야기했다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하느님에 의해 수동적인 정화를 거치게 되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달도 내 누이가 되고, 꽃 한 송이도 형제가 된다. 이는 인간이 가진 능력에 의해서, 능동적인 노력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 해석할 수밖에 없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신비적 차원의 경지다.

이렇게 감각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변화되면, 자연히 이성도 하느님께서 판단하시는 그러한 형태로 바뀌게 된다. 기억도 바뀌고, 의지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러한 의지대로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완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카르멜의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테레사 성녀가 말한 ‘영혼의 성’과 연관지어 설명하자면 1~4궁방은 능동적 정화의 삶이었고, 5~7궁방은 수동적 정화의 삶이다. 물론 5~7궁방에서도 감각이 중요하다. 인간은 감각적 동물이기에 감각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본 것이 있어야, 느낀 것이 있어야, 들은 것이 있어야 판단과 기억, 의지도 변화된다. 그런데 5~7궁방에서의 감각의 변화는 나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한 수동적인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과의 합치를 이루는 관상의 단계는 특정한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다. 누구나 그 단계에 들어설 수 있고, 또 들어가야 한다. 물론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시기 때문에, 그 합치의 단계에 들어서는 상황과 여건은 다를 수 있지만, 합치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

주어진 처지에서 처음에는 스스로의 피땀 어린 노력을 기울이고, 그 다음 단계에서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누구나 7궁방의 완전한 행복에 참여할 수 있다. 변형일치의 기도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의 성 요한은 수동적 정화의 단계를 설명하며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치의 삶을 요청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저서 「어둔 밤」은 워낙 심오하기에, 영성가들마다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둔 밤」을 이상과 같이 설명한 것이다. 우리는 한 번에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없다. 단지 조금씩 깨달아 나갈 수 있을 따름이다. 1궁방에서 7궁방까지, 기도의 1단계에서 7단계까지, 능동적 정화에서 수동적 정화의 단계까지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길은 누구나 걸어갈 수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모범을 본받아,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치의 경지까지, 황홀한 관상의 경지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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