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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68)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1) 근면·행실·성격 100점 그러나 공부는 ‘0점’

평범한 농부의 아들 어릴적 신앙심 남달라, 뛰어난 성덕 불구 부족한 학업 발목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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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약 사제가 된다면 많은 영혼을 구하겠어요.”

눈이 움푹 들어간, 하지만 맑게 빛나는 파란 눈을 가진 열일곱 소년의 꿈은 오직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요한 마리아)는 사제가 되겠다는 아들을 붙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1786년 5월 8일 프랑스 리옹 인근의 한 농촌 마을에서 6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아들, 요한 마리아 비안네(John Mary Vianney)는 자라는 동안 여느 아이들과 특별히 다른 점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심만큼은 남달랐다. 비안네가 일곱 살 때 성모상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비안네는 신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3살되던 해(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때문이다. 혁명의 여파로 파리에선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추방되었으며, 살해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려면 몸을 숨겨야 했던 살벌했던 시절이었다. 비안네가 13살이 되고 나서야 첫영성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첫영성체도 물론 창문을 가린 방에서 해야 했다. 이런 생활은 1799년 나폴레옹의 등장과 그 후 1801년 정교 협약을 거치고 나서야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성소의 꿈을 이야기한 그 이듬해, 열여덟 살의 비안네는 인근 본당 발레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위대한 인물에게는 늘 위대한 스승이 있듯, 비안네의 옆에는 늘 발레 신부가 있었다.

하지만 초창기의 비안네는 발레 신부를 당황하게 했다. 비안네는 어린 시절, 농사일만 배운 탓에 기초 교육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했다. 자국어였던 프랑스어의 문법조차 제대로 몰랐으니, 당시 신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필수였던 라틴어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마티아라는 학생이 비안네의 라틴어 공부를 도와주고 있었다. 마티아는 속에서 불이 났다. 다른 친구들은 조금만 도와주면 번역할 수 있는 간단한 문장을 비안네는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 멍청이~.” 결국 마티아는 화를 참지 못한 나머지 비안네의 뺨을 때렸다. 마티아는 비안네보다 여덟 살이나 어렸다. 비안네의 몸은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로 다져온 건장한 몸이다. 힘도 당연히 더 셌다. 그런데 비안네는 여덟 살 어린 소년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히 인정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마티아와 비안네는 이후 평생 동안 돈독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발레 신부는 뛰어난 성덕과 신심을 가진 비안네가 학업 때문에 성소의 꽃을 피우지 못할까 걱정했다. 그런 발레 신부에게 비안네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저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발레 신부에게 짐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발레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는 거야. 사제품, 영혼들의 구원도 끝나는 거지.”

하지만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안네의 공부에는 진전이 없었다. 그런 비안네가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발레 신부의 곁을 떠난다. 이제는 홀로서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하지만 공부 문제는 나폴레옹 황제의 징집으로 인한 병역 문제 이후, 1812년 소신학교 철학과정에 입학할 때까지 계속 비안네의 발목을 잡는다.

당시 신학교 시험은 교수와 학생들이 라틴어로 문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비안네는 시험 때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입학 동기들은 그를 비웃었다. 사람들은 그를 ‘열등생’으로 낙인찍었다. 이 시절 비안네의 성모 공경 신심이 더욱 깊어진다. 어려운 학업을 극복하기 위해 비안네는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기로 서원한 것이다. 그리고 학업의 어려움 속에서 평생의 영적 동반자, 마르첼리노를 만나게 된다. 마르첼리노 샴파냐(마리아의 작은 형제회?마리스타교육수사회 창설자)도 역시 라틴어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현실이었다. 비안네의 고민은 깊어갔다. 공부를 도저히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당시 비안네의 학년말 생활기록부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근면 : Good ▲행실 : Good ▲성격 : Good ▲지식 : bad.

돌파구가 필요했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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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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