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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70)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3)

아름다운 영혼 지닌 ‘인기짱 보좌신부’, 짧고 명쾌한 강론·성인의 고해소 인기 최고, 얼마되지 않은 월급 늘 가난한 이들과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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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성체의 성인’‘고해소의 성인’‘본당신부들의 수호 성인’의 씨앗이 뿌려졌다.

비안네가 보좌신부가 된 것이다. 29세의 나이였다. 오늘날에는 29세 혹은 30세 사제서품이 당연해 보이지만, 비안네 당시로서는 동년배들보다 3~5년 늦은 서품이었다. 그만큼 비안네의 사제수품은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비안네는 아직 미완의 사제였다. 교구가 사제품은 인정했지만 고해성사 집전권을 유보한 것이다. 교구에선 아직도 그를 신뢰하지 못했다. 그래서 발레 신부는 비안네 신부의 고해성사 집전권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비안네 신부가 하루라도 빨리 신자들의 영혼과 마주앉아 그들을 치유해 줄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결국 1~2년 유보될 것으로 예상됐던 비안네 신부의 고해성사 문제는 발레 신부의 노력으로 의외로 수개월 만에 해결될 수 있었다.

첫 고해자는 발레 신부였다. 발레 신부가 비안네 신부 앞에 무릎을 꿇고 고해를 하는 그 감격스런 모습은 2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마음을 찡하게 한다. 발레 신부는 모든 사람이 “포기하라”고 했지만, 비안네 신부의 성덕을 믿었다. 그리고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는 ‘속 터지는 제자’를 끝까지 믿고 이끌었다. 발레 신부가 없었다면 비안네 신부도 없었다. 그만큼 비안네 신부의 첫 고해자를 자청한 발레 신부의 심정은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고해성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아마도 “이제서야 하느님의 뜻이 우리안에서 이뤄졌다”고 감격해 했을 것이다. 함께 무릎을 꿇고 십자가 앞에서 오랜 시간 기도를 했을 것이다. 포옹하고 울었을지도 모른다.

비안네 신부가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했고, 또 신심이 깊다는 소문은 이미 사제가 되기 전부터 인근 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비안네 신부의 고해소 앞에 줄을 지어 섰다. 비안네 신부는 소위 ‘인기짱 보좌신부’였다.

교리교육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비안네 자신이 공부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했는가. 당연히 비안네 신부는 더딘 학습 진도를 보이는 학생들을 한없는 인내와 온화함으로 대했다. 강론도 짧고 명쾌했다. 말과 글은 원래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모를 때, 길고 장황해지는 법이다. 완벽하게 소화한 내용은 쉽고 명쾌해진다.

비안네는 가난했다. 얼마 되지 않은 월급 대부분을 가난한 이들과 나눴다. 이런 일이 있었다. 비안네는 낡고 볼품없는 오래된 수단을 입고 있었다. 동료 사제들과 신자들은 시간이 날 때 마다 “신부님, 수단이 낡았습니다. 제발 새 옷을 사서 입으세요.”라고 말했다. 비안네는 주위의 강압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어느 날 새 수단 하나를 장만했다. 그런데 그날 가난한 한 여인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다. 비안네는 즉시 수단을 구입한 곳에 가서 돈을 돌려 받아 여인에게 주었다. 비안네 성인 전기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비안네가 일생동안 새 수단을 입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비안네는 또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공동체의 회심을 위해 자주 금식 고행을 했고 매일 긴 시간동안 성체 앞에서 기도했다. 신자들은 이런 비안네를 존경했다. 그래서 신자들은 단식 등 고행을 즐겨하는 비안네 신부에게 “몸을 돌보아야 한다”고 항의를 할 정도였다.

비안네는 행복했다. 사제로서 신자들과 함께 살아가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했다. 하지만 하느님은 늘 기쁨 뒤에는 슬픔을 주신다. 발레 신부가 하느님 품으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영적 아버지의 최후를 지켜보는 것이 비안네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1817년 겨울, 66세의 발레 신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잘 있어! 용기를 내. 제단에서 나를 꼭 기억해 줘.”

발레 신부는 비안네를 정확히 보았고, 비안네를 가르쳤고, 사제직으로 인도했다. 비안네가 좌절할 때마다 발레 신부는 옆에 있었고, 비안네와 함께 걸었다. 이후 비안네는 매일 아침 미사를 드릴 때마다 발레 신부를 위해 기도했다.

비안네는 이제 혼자가 됐다. 3개월 후, 교구는 혼자가 된 비안네 신부를 본당 주임신부로 발령한다. 부임지는 ‘아르스’였다. 30km떨어진 곳이었다.

비안네는 짐마차에 옷 몇 벌과 발레 신부가 남긴 책들을 싣고 첫 부임지로 향했다. 1818년 2월 9일 이었다.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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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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