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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3) 영성이란 무엇인가 (3)

영성은 인간이 가진 조건에서 출발/ 내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 현실적 현상보다 하느님의 큰 뜻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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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톨릭 영성을 단순화시켜 분류하자면, 근본적 영성, 특수한 영성, 주부적(注賦的) 영성, 개인적 영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근본적 영성은 말 그대로 가장 근본이 되는 영성이다. 청빈, 정결, 순명 혹은 신덕, 망덕, 애덕 등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기본적 영성이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영성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도 지켜야 하고, 꾸르실리스따들도 지켜야 한다. 성령기도회 회원들도 지켜야 한다.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근본으로 삼아야 할 영성이다.

특수한 영성은 조금 다르다. 모든 이들이 지킬 필요가 없다. 교회 역사 안에는 그동안 수많은 특수 영성들이 꽃을 피웠다. 도미니코회,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베네딕도회 등 수도회 영성이 그것이고, 레지오 마리애 등 신심 단체들의 영성도 그렇다. 하느님은 시대 상황에 맞게끔 섭리하셔서 특수한 이들에게 특수한 영성의 깨달음을 주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영성은 물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따르면 좋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수도회 회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다. 예수회 회원은 프란치스코회 영성에 평생 동안 투신할 필요가 없다. 일반 신자들도 예수회 영성에 투신할 강제성이 없다. 그래서 ‘특수한’이라는 말이 붙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근본적 영성과 특수한 영성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가 말한 특수 영성의 청빈과 가톨릭 근본적 영성에서의 청빈은 그 성격이 조금 다를 수 있다. 근본적 영성에 있어서 청빈은 돈을 정당한 방법으로 얻고, 정당한 방법으로 쓰는 것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당시에는 하느님 뜻에 맞게 벌고, 하느님 뜻에 맞게 쓰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당시 많은 이들은 물질의 노예로 살았다. 진정한 의미의 청빈 영성이 빛을 잃어가던 그 시기에는 극단적인 청빈의 특수 영성이 필요했다.

세 번째, 주부적(注賦的) 영성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주부적 관상(觀想, contemplatio)이다. 근본적 영성과 특수한 영성이 보다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느님과 직접 연결되는 것으로,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주부적 관상은 하느님의 은혜로 인하여 신적(神的) 영역을 체험하고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수동적 관상이라고도 한다. 영성생활을 깊여나가다 보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이끌림을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관상은 하느님께 집중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더욱 겸손하고 관대하게 하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얼핏 몇몇 특별한 은총받은 이들에게만 가능한 영성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나 가능한 영성이다.

넷째, 개인적 영성은 모든 인간 개개인이 가지는 영성이다. 넓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근본적 영성, 특수한 영성, 주부적 영성은 모두 개인 영성에 화살표를 겨누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근본적 영성의 영향도 받고 특수한 영성의 영향도 받는다. 우리 모두가 프란치스코 수도회 회원이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영성의 영향을 받는다. 예수회의 영향도 받고, 살레시오 수도회의 영향도 받는다. 그 모든 단비 속에서 개인 영성생활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사실 근본적 영성도 특수한 영성도 모두 나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이다. 근본적 영성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영성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영성들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가 중요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성은 인간이 가진 조건 속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이미 창조되었기에, 영적 생활이 가능하다. 인간이기에 근본적 영성, 특수한 영성, 주부적 영성을 따를 수 있고 개인적 영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소나무는 소공동체 모임을 할 수 없다. 개구리는 성체 조배를 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영성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기와 물의 고마움을 잊고 살 듯, 그렇게 주어진 영성적 성향에 대해 잊고 산다. 그래서 눈 앞의 현실적 문제에만 급급해 하며 산다. 그러면서 ‘인생은 괴로워’한다. 이는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깊은 뜻을 놓치는 것이다. 눈 앞의 급급한 현상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자! 이제 준비됐는가. 가톨릭 근본적 영성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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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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