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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6) 영성이란 무엇인가 (6)

특수한 영성은 근본적 영성 풍요롭게해/ 각 수도회 영성과 신심단체 영성 일컬어/ 해당자에 영적 위안과 성장의 기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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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영성에는 근본적 영성이 있고, 특수한 영성이 있다. 특수한 영성은 말 그대로 특수한 것이다. ‘특수’(特殊)라는 말은 얼핏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것보다는, 특별하고 특수한 것에 열광하는 성향이 있다.

특수한 영성은 각 수도회 영성 혹은 신심단체 영성 등을 일컫는다. 이 영성은 해당자에게는 큰 영적 위안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특수하기 때문에 밋밋한 신앙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줄, 매력적인 그 어떤 것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하느님 사랑의 의미를 특수한 영성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특수한 영성은 그 자체로 근본적 영성에 기대고 있다. 근본적 영성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영성이지만 특수한 영성은 그렇지 않다. 믿음 희망 사랑, 청빈 정결 순명, 기도, 은총과 같은 근본적 영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지만 레지오 마리애는 모든 이들이 가입해야 하는 신심 단체가 아니다. 외국에 나가면 레지오 마리애라는 단체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신자들이 많다. 심지어 성직자나 수도자조차도 그렇다. 레지오 마리애를 모른다고 해서 영성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란치스코회가 전 세계에 진출해 있지만, 모든 이들이 그 회칙에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되는 것은 근본적 영성이다. 근본적 영성의 뿌리 없이 특수한 영성에만 매달릴 때, 자칫 아집과 교만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내가 속한 수도회가 최고야” “내가 몸 담고 있는 신심단체의 영성이 최고야”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특수한 것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특수한 영성을 확장시켜 생각해 보자. 특수한 영성은 단순히 수도회나 신심단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끼리끼리’를 좋아한다. 이를 그럴싸하게 말하면 “인간은 ‘공동체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가 된다. 혼자서는 성장하기 힘들다. 특수한 영성은 이 공동체적 성향과 적절하게 부합한다. 특수한 영성은 우리를 영적으로 일치시키며, 결과적으로 소속감을 통해 더 나은 신앙 생활로 이끈다. 그래서 공무원 교우회 모임, 가톨릭 의사회, 가톨릭 간호사회, 가톨릭 문인협회, 가톨릭 법조인회 등도 모두 특수한 영성의 장(場)이 될 수 있다.

의사 직분으로 어떻게 하면 세상에 하느님의 뜻(神術)을 펼칠 수 있을까, 법조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공동체 기도 안에서 함께 모색할 때, 그 모임은 특수한 영성을 구현시킬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서도 근본적 영성을 망각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보자. 학생의 학교생활에서 근본적인 것은 공부, 인격 도야, 자아 실현이다. 동아리 활동은 특수한 것이다. 특수한 활동들은 모두 근본적인 것, 즉 학업과 인격도야를 돕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동아리 활동 자체에 매몰돼 근본적인 것은 잊는다면 이는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정치인이 정치의 근본적인 성격을 잊고, 정치가 주는 달콤함에만 도취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근본적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많은 이들이 불행해 지는 이유도 근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특수한 영성은 일종의 외식에 비유할 수 있다. 외식을 하면 부족한 영양분을 고르게 섭취할 수 있고, 가족이 화목해 지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다. 특수한 영성은 근본적 영성을 풍요롭게 하고, 더 잘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근본적 영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특수한 영성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그리고 그 선포를 담고 있는 성경이 근본적 영성이다. 복음 및 선포와 동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가톨릭 특수 영성이 아니다. 교회 안에는 많은 사회 복음화 단체들이 있다.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지원하는 단체도 있다. 이들 단체들의 활동은 전적으로 근본적 영성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예수님의 뜻, 하느님의 뜻을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인간의 판단이 잣대가 된다면 그것은 특수한 영성이라 볼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나’다. 근본적 영성도 좋고, 특수한 영성도 좋다. 그렇다면 그 영성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와야 한다는 말인가.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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