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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08) 바람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네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삶 안에서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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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동창 신부님들과 제주도 우리 집으로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산책 삼아 송악산에 갔습니다. 그날은 큰 태풍이 오려는 사흘 전이라 그랬는지, 바람이 좀 심하게 불었고 하늘은 푸르렀지만, 파도는 심하게 출렁거렸습니다. 때마침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에 있었고, 우리처럼 가벼운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함께간 동창 신부님이 말했습니다.

“야, 바람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네, 겸손하게.”

정말 그랬습니다. 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어떤 이들은 손으로 눌러 쓴 모자를 잡거나, 몸을 바람 반대로 돌려 걷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정말 바람 잘 날 없네’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이는 아시다시피 작고 큰 인생의 굴곡을 바람으로 표현해낸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네 인생살이는 바람의 연속입니다. 때때로 태풍처럼 강도 높은 바람을 만나 삶 전체가 휘청거리며 뒤흔들리기도 하고, 스산한 바람 앞에서는 울적하고 우울한 마음에 슬피 울기도 하고, 소소한 바람 앞에서는 ‘희로애락’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 또 어떤 날에는 바람 한 점 없는 듯한 무미건조한 삶 앞에 불어오는 바람 한 줌에는 새삼 그 바람으로 인해 다시 기운을 차리기도 합니다. 이토록 ‘바람’을 통한 자연의 이치 앞에 삶의 의미를 반추해 본다면, 우리에게 불어온 그 모든 바람은 어쩌면 우리를 고개 숙이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아니 결국은 우리를 ‘성장’시키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그런 큰 태풍 같은 바람이, 아니 왜 하필이면 그때 그런 큰 풍랑 같은 바람이 불었는지!’ 이에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와의 대화 가운데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는 말씀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너무나 잘 아셨던 것입니다. 바람의 속성을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고통을 수반한 바람의 굴곡 앞에서 ‘왜 나에게 그런 바람이’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불기에 우리 삶의 바람,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는 것 같습니다. 늘 바람의 굴곡 앞에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람이 ‘영(靈)의 움직임’ ‘선(善)의 움직임’ ‘성장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영’의 본질이 인간을 하느님 안에서 성장시키는 기운이기에 우리가 만나는 바람들은 분명 우리를 고개 숙이게 만들어 결국 우리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겸손의 원천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의 기운’인 바람의 굴곡들은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삶의 기운이 될 수 있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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