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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14) 영성이란 무엇인가 (14)

‘새로움’을 위한 에너지는 만남 통해 온다/ 인간은 가정·이웃·사회 등 관계성 안에서만 존재/ 신앙생활 위해 내 안에 있는 합치의 성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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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성적 삶을 위해선 ‘분별’과 ‘정화’가 필요하다고 앞에서 말했다. 이러한 분별과 정화는 우리가 매일 처하는 수많은 상황들, 또 그 상황들이 펼쳐지는 이 땅 위에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내가 지금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살고 있는 곳은 달나라가 아니다. 지구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느님 손바닥 안의 존재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형성의 장’ 밖으로는 한발도 내디딜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왜? 하느님이 그렇게 섭리해 놓으셨다. 인간은 가정, 이웃, 사회, 세계, 우주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이 관계성 안에서만 인간은 존재한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고 해서, 지구를 벗어난다고 해서 이 관계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태양계와 은하계, 전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성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세월 그 이전에 이미 섭리(선형성)되어 있었다.

근세기 들어 인류 문명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기는 했지만 이것도 사실은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아주 조금’ 알아듣는 정도에 불과하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라고 해도 우주의 신비에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이러한 신비스런 세계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동시에 겸허한 마음으로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 돈과 권력, 자만이 위험한 이유도 자칫 하느님의 이러한 섭리를 망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창조 이후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보다 잘났다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럼에도 학계, 정계, 재계, 법조계 등 주위를 보면, 하느님 놀라운 작품의 1억만분의 1, 바닷가 모래알 하나 알고 나서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은 육신과 정신, 마음(영)의 3중 구조로 되어 있다. 육신의 에너지는 충동이고, 정신의 에너지는 열망이고, 영의 에너지는 갈망과 영감이다. 영은 특히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의 에너지를 받는다. 이 세 가지 에너지를 잘 조화시켜 하느님을 향한 합치의 성향(이 성향은 이미 내 안에 형성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형성의 신비다)을 키워야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누구나 나약함과 부족함, 한계성을 지닌 존재임을 인지하고 연민의 성향을 키워나가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 각자가 매일 접하는 상황들과는 융화의 성향을, 세계와 우주에 대해서는 인간 역량의 성향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미리 형성하신 신비를 따르는 삶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간의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남북문제에 있어서 38선만 없애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38선이 없어지면 18선, 28선, 48선, 68선이 생길 수 있다. 인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천성이다.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하느님의 성향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왜 인간을 만드셨을까. 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까. 이걸 알아야 문제가 풀린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이제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나와 태양은 어떤 관계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이 관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태양은 항상 위에 있는 것”이라며 ‘묵상하기’를 멈춘다. 나와 강의 관계, 나와 바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주어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한다. “당연하지”가 문제다.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감사할 수 없게 된다. 매일 우리 앞에 주어지는 신비에 무감각한 채, 그저 나에게 유익하면 선(善)이고 나쁘면 악(惡)이라는 단편적 생각을 가지고 대부분 살아간다.

죽기 전에 내가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죽기 전에 내가 보고, 만져보고, 느낄 수 있었던 그 모든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번 정도는 깨닫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선종 전에 고백하셨듯이, “고맙습니다. 나와 만났던 모든 것,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고맙습니다”라며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변의 잡다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이제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해 보자. 그렇게 집중하며 살기에도 인생 80년이 짧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늘 삶과 영에 활기를 불어 넣는, 에너지를 주고 계신다. 늘 깨어 있는 삶을 통해 그 에너지를 충만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새로움’(new)으로 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움을 위한 에너지는 어디를 통해 오는 것일까. 또 누구를 통해 오는 것일까. 바로 형성의 장 전체 안에서 인간 상호간 그리고 세상환경과의 만남을 통해 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맞닥뜨리는 그 수많은 만남들 속에 신비가 숨어 있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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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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