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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15) 영성이란 무엇인가 (15)

주님께서 마련하신 인간과 성경의 만남/ 가장 가까이서 무한한 하느님 만나는 유일한 길/ 하느님 계시(啓示) 가득한 ‘성경’ 읽으면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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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이었어~. 잊~기엔 너무나~ 나의 운명 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 노사연의 「만남」

만남은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만남에는 격이 있다. 이권과 출세를 위한 만남이 있고, 영적인 만남이 있다. 이기적인 만남이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만남이 있다. 또 인격을 타락시키는 만남이 있고, 인간 존재를 성장시키는 만남이 있다.

나는 주변에 있는 만남 중에서 조금 격이 있는 만남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소공동체 만남을 말한다. 선의를 가진 신앙인들이 함께 손을 잡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려고 하고, 하느님 안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그런 만남이라서 그렇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이런 아름다운 만남 이외에도 힘든 만남을 많이 경험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난 000 때문에 힘들어.” “저 사람만 없으면 내가 행복할텐데.” “저 사람은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두고 나는 ‘밥통’이라고 말한다. 지금 나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 고민으로 세월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다른 사람이 괴롭히든 말든, 시기하든 말든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시기하고 박해하려 해도, ‘나 자신’에 대해 신경 쓸 시간조차도 모자라는 존재다”라며 잊어버려라. 이런 저런 말을 옮기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은 ‘건달’로 치부하면 된다. 건달에 대한 효과적 대처법은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말에 속상해 할 필요조차 없다. 신경 쓸 시간조차 아깝다.

지구 인구는 70억 명에 달한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내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2~3명 쯤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야 하느님도 할 일이 있지 않겠는가. 2~3명 관계 버거운 것 가지고 뭘 그렇게 절절매는가. 사실 2~3명과 힘든 관계를 가진다는 것 자체도 군자 정도의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민할 거리도 없다. 2000여 명 정도 괴롭게 지낸다고 한다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멋있는 길이 있지 않은가. 앞만 바라보고 걸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나 혼자서 앞만 바라보며 지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다. 집어 들어 읽어야 할 것이 있다. 힘든 만남을 극복하게 하는 진정한 만남이 있다. 소공동체 만남보다 더 중요시해야 하는 만남이 있다. 성경이 그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느님을 알 수 없다. 깜깜한 상태다. 그런데 계시라는 것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계시(啓示)는 말 그대로 ‘열어 보인다’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열어 보이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에 대해 ‘조금’ 알게 됐다. 이렇게 하느님이 먼저 열어 보여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은 하느님을 알 길이 없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열어 보이신 것이 활자화되어 전해진 것이 성경이다. 성경 안에는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신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보화의 창고다.

반복적인, 또 한편으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역사적 사실의 나열은 처음 성경을 접하는 이들에게 힘들게 다가올 수 있다. “성경 내용이 황당한 신화나 소설과 다를 것이 뭐가 있어?” “판관기는 삼국지 판박이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 속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엄청난 묵상거리를 제공한다. 성경은 한민족, 미국, 중국 역사가 계시된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이스라엘 역사 안에 펼쳐진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을 알려면 성경을 읽는 수밖에는 없다. 이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만남 거리도 한층 가까워진다. 성경을 봐야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무슨 역할을 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다. 하느님을 알고, 그 뜻을 좇는 것이 영성이다. 이처럼 성경은 영성과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제 성경을 통한 영성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하느님의 계획된 초대에 의한, 성경과의 그 만남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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