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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11) 가슴으로 품고 사는 십자가

성물 소중히 간직할 때 생명력 있는 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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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는 형이 있는데, 그 형의 집에 놀러 가면 작고 아담한 탁상용 십자가가 가장 좋은 자리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사를 갈 때도 손수 그 십자가를 들고 갔었고, 먼저 그 십자가를 놓을 자리를 생각한 후 가장 좋은 자리에 십자가를 모셔 놓고 이삿짐을 풀 정도로 그 십자가에 대한 애정이 지극합니다.

얼마 전, 그 형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형, 이 십자가, 형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나의 궁금증을 알고 있기나 한 듯 그 형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83년도에 어머니께 선물 받은 거야. 당시 어머니가 다니시던 본당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자녀에게 정말 좋은 탁상용 십자가를 하나씩, 꼭 사주라고 당부를 하셨대. 그리고는 비록 눈에 보이는 십자가지만 자녀들이 그 십자가를 소중히 간직하며 지낸다면 그 십자가는 자녀들의 마음 안에 살아 숨 쉬는 신앙의 힘이 될 것이라고 하셨대. 그 신부님은 자신이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던 계기 역시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십자가 때문이래. 그 후에도 평생 그 십자가를 간직하며 살고 있는데, 당신 자신의 소원이 그 십자가를 쥐고 관까지 가는 것이래. 그러면서 그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겼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마지막 눈을 감고 싶어 하셨다고 하더라. 사실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간직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은 그 십자가가 있는 곳에 자연히 눈을 돌리는 버릇이 생겼고, 이 십자가를 볼 때마다 왠지 나의 첫 마음들이 생각나고, 힘든 때 이 십자가를 통해 삶의 어려움을 극복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도 이 십자가의 힘을 믿고 앞으로 살고 싶고, 그리고 죽어서도 그 신부님처럼 이 십자가를 쥐고 무덤까지 가려고.”

예전에 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님이 ‘무력이 옳다면 세상에 사랑이 설 자리가 없다’며 성체가 모셔져 있는 십자가를 들고 과라니족 원주민들과 함께 정복자의 총, 칼 앞으로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비록 그 십자가는 단지 눈에 보이는 십자가였지만, 그 십자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표징과 상징’이 보여주는 ‘힘’입니다.

탁상용 십자가, 단지 눈에 보이는 ‘성물’이겠지만 그 ‘성물’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세상’과 맞설 수 있게 해주는 생생히 살아있는 힘이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물, 진심으로 소중히 간직할 때 그 성물은 ‘물건’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힘이 됩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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