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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16) 계시에 대해서…(1)

하느님께서 직접 열어서 보여주시다/ 유한한 인간, 하느님 통해서만 모든 것 알 수 있고/ 계시의 결정판인 성경안에서 하느님 뜻 발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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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을 산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은총 안에서 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은총이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욕심을 끊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밥이나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그릇일 수 있는 이유는 비어 있어서다. 황금으로 만든 그릇이라 하더라도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지 않다면 그것은 그릇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그릇은 스스로가 비어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담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욕심을 줄여나가다 보면 번뇌도 조금씩 줄어들게 되고, 그 번뇌의 빈자리에 은총이 들어오게 된다. 108번뇌를 105번뇌로 만들면 3은총이 쌓인다. 100번뇌로 바꾸면 8은총이 쌓이고, 10번뇌로 바꾸면 98은총이 쌓인다. 108번뇌가 사라지면 그때 온전한, 은총 충만의 상태가 된다.

반대로 은총이 없는 상태(정확히 표현하면 거저 쏟아지는 은총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고통이다. 욕심이 번뇌를 일으키고 그 은총을 고갈시키는 번뇌가 고통을 수반한다. 세상의 수많은 고통들은 대부분 이같은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욕심스럽게 살 것인가, 아니면 은총 안에서 살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선 불교와 달리, 이러한 인간 결단에 일종의 초월적 개입이 필요하다. 계시(啓示)가 그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계시 종교라고 불린다. 계시란 말 그대로 ‘열어서 보여준다’는 의미다.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신 것이 바로 계시다. 그리스도교적 사유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신 것만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유한하고 하느님은 무한하다. 아니, 하느님은 무한의 개념 자체를 벗어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열어보여 주심’없이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이렇게 계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온다. 그런데 이 계시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선 아래로부터의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하느님께서 열어보여 주신 것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인간인 만큼 계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계시를 받아들이는 인간이 개방되어 있을 때, 비로소 계시는 의미를 지닌다. 내가 열려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계시, ‘열어 보여주심’의 결정판이 성경이다. 따라서 성경을 봐야 무한하신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역할을 하시는 지, 무엇을 원하시는 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성경은 그 자체로 교의적이거나 영성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사상을 가르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여기서 교의적이지 않다는 말은, 교리적 신학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교의는 창조론, 그리스도론, 신론, 성령론, 마리아론, 교회론, 성사론, 종말론 등이다. 창조와 구세사, 그리스도, 하느님, 성령, 마리아, 교회 등의 진리를 학문적 구도로 체계화한 것이 바로 교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교의신학을 목적으로 기술된 책이 아니다. 물론 성경을 통해 우리는 교의신학을 할 수 있다. 성경은 교의신학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성경이 교의신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영성생활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우리들의 영성생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물론 영성생활을 잘 하려면 성경을 봐야 하지만, 성경 자체가 영성생활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잠깐 성경을 읽는 방식에 대해 짚어보고 넘어가자.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성경에서 뽑아서 읽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은 성경 안에서 정치적인 면을 부각시켜서 읽는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어떻게 백성들을 이끌었는지, 또 판관들은 어떻게 지도력을 발휘했는지 파악하려 한다. 의사 혹은 천문학자들도 성경 안에서 나름대로 같은 분야의 기술들을 뽑으려고 한다. 하지만 성경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천문, 의료, 교육 등을 가르쳐주기 위해 적혀진 책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 분야는 성경을 통해 빛을 받을 수 있다. 지침 혹은 도움, 나아가야할 방향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정치 경제 문화를 위해 적혀진 책이 아니다. 당연히 성경에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이데올로기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도 무의미하다.

편식은 곤란하다. 몇몇 관심사에 초점을 맞춰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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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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