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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18) 계시에 대해서…(3)

하느님의 계시를 몰라보는 ‘우리들’/ 인간이 몸·정신·영의 존재로 창조된 것은/ 계시 안에서 살아가라는 ‘하느님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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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다.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시는 것에 의존한다. 열어 보인 것을 보려면, 나 자신이 개방되어야 한다. 그렇게 받아들인 것을 이웃에게 다시 열어 보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현주소는 어떤가.

5살 아기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열어 보여주셨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계시 밖에서 살아간다. 먹고, 자고, 울고, 웃고…. 몸이 명령하는 본능대로 살아간다. 이 아기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돼도 마찬가지다. 숙제도 많고 해야 할 공부도 많다. 대부분 중고등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정신 없이’ 살아간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열어 보이셨는지 관심도 없다. 계시에 따르는 삶이 아니라 계시 밖에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대학을 나오고 사회생활을 한다고 해서 이러한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직장에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위해 쉼 없이 달린다. 자신이 하는 일이 하느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정신 없이’ 살아간다. 그렇게 계시 밖에서 살아간다.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돈도 벌려 하고, 정신을 편하게 하기 위해 명예도 성취하려 한다.

그런데 인간은 몸과 정신, 영(마음)의 3중 구조를 지니고 사회 역사적 관계의 바다 속을 헤엄치며 살아가는 존재다. 따라서 몸과 정신 이외의 영의 행복도 추구하려는 욕구를 가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신앙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진정한 계시 안의 삶은 쉽게 성취되지 않는다. 한 40대 남성이 교리를 열심히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해 보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본당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마음에 상처주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상처를 받고 냉담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신앙인이라고 하더라도 계시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다. 계시 밖의 삶은 달콤하다. 깊은 된장찌개 맛이 아니라 떡볶이 맛, 달고나 맛이다. 단 맛이 많다 보니 쉽게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들도 모두 계시 밖의 삶이 만들어낸 결과다.

인간이 몸과 정신, 영(마음)의 존재로 창조된 것은 계시 안의 삶을 살라는 하느님의 초대다. 계시 안의 삶을 살라고 이렇게 우리를 창조했는데 정작 우리는 계시 밖의 삶을 살아간다.

요즘 정치인치고 종교 하나쯤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싸움을 한다. 닭과 소 등 동물들도 싸움을 하지만 정치인들처럼 그렇게 오래 싸우지 않는다. 종교를 가진 이들이 싸운다. 계시 안이 아니라 계시 밖에서 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계시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계시 안에서 살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계시 밖과 안을 살펴보았는데, 계시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 바로 계시 전(前)의 차원이 그것이다. 계시 안으로 아직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계시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의 상태가 있다. 종교가 없다고 하더라도 순수함을 유지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그들이다. 제자의 미래를 위해 전 생애를 헌신하는 스승, 명예와 돈보다도 인류애를 우선하는 의료인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 사랑, 은총 등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계시 안에 가까운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무엇을 열어 보여주셨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선한 그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선함이라는 것 자체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타종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불교와 유교, 이슬람, 힌두교 모두 하느님의 계시에 대해 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계시 안의 삶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종교들은 하느님의 뜻에 가까운, 계시 전단계를 성취하고 있는 고등종교들이다. ‘무당’도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 하늘의 복(福), 욕심을 버리는 삶 등을 이야기 하며, 인간을 선한 삶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무당은 인간이 세상 고통에서 벗어나 자신을 추스르고 참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다는 점에서 계시 전이라고 볼 수 있다. 타종교들을 무조건으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지금 어떤가. 계시 밖인가, 계시 안인가, 혹은 계시 전인가.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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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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