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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19) 계시에 대해서…(4)

하느님 계시에 집중하고 깨어 있어야/ 세례받음은 하느님의 계시 따르겠다는 의지/ 진리 앞에 겸손의 마음으로 끊임없이 정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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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보면 계시 전(前)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가정에도 직장에도 심지어는 성당에 가도 있다. 여기서 ‘계시 전’은 그리스도교를 믿지는 않지만, 신앙인의 모습처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교(계시 종교)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 위해선 계시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이들은 아직까지 그 계시의 경계선상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선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을 본래 선하게 창조하셨다. 참으로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하느님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셨다. 잠자는 어린 아기의 얼굴을 보라. 그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어보라. 인간 한 명 한 명은 완전한 하나의 위대한 예술품이자 창조물이다. 인간은 그래서 본래적으로 착하다. 선하신 하느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하느님의 자유의지까지 그대로 빼어 박을 정도로 완벽하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의 착함의 능력을 자유의지로 잘 발휘하면서 생활해야 한다. 이것은 창조물 인간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계시 안(內)의 삶과 계시 밖(外)의 삶이 대비되듯이, 계시 전(前) 차원은 계시 후(後) 차원과 대비된다. 계시 후는 계시 안의 삶으로 들어왔지만, 아직 계시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스스로 가진 나약함으로 인해 하느님의 계시를 전적으로 깨닫기 힘들다. 세례를 받겠다는 의지는 계시를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말함이지, 계시를 완전히 알아들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신앙인이 됐다고 해서, “나는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례는 계시 밖에서 계시 안으로 들어옴을 의미할 뿐이다. 계시를 완전히 깨닫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박사학위 다섯 개 가진 교수라고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시는 가르침 앞에서는 유치원생 수준도 안 된다. 대통령이 되어 나라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다고 해서, 재벌 총수가 되어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한다고 해서 하느님의 계시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상의 그 어떤 인간도 하느님의 계시를 모두 파악하지 못한다. 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완전히 계시를 파악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는 세례 받은 후 “나는 다 배웠다” “나는 다 안다”며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되는 이유다. 하느님은 교리 몇 개 알았다고 해서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성경에는 천지창조부터 종말까지 모든 우주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 엄청난 진리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 겸손의 마음으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학문도 모두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지 않았다면 그 어떤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철학과 생물학, 지리학, 의학, 심리학, 물리학, 천문학 등 모든 학문적 성취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안배하신 것이다. 이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 자체도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런 학문들은 하느님과 연결되어야 한다. 주인을 향해야 한다. 그것들을 가능하게 한, 계시의 주체인 하느님을 향해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계시 뜻과 연결시켜, 계시 안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류의 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의학, 물리학 등이 생명을 파괴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수많은 인간 생명이 연구실에서 죽어가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계시 밖에서 헛된 망상을 좇으며 살고 있다. 신앙인들은 하루 빨리 계시 밖의 차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많은 이들이 계시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돈과 명예만 좇으며 사는 이들에게 진정한 계시의 의미를 인식시켜야 한다. 이것이 복음 선포다.

이를 위해선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늘 하느님의 계시에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푹 빠져 살아간다. 테니스와 수영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선 4~5시간을 보내면서도 성당에 잠깐 앉아있는 시간에는 인색하다. 안타깝다. 시간이 없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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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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