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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20) 계시에 대해서…(5)

‘계시’ 받아들이고 드러낼 주체는 ‘나’/ 유년기 거쳐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 탐색하고 지속적으로 주님 뜻 깨달아 자신을 성장 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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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구체적으로 하느님 계시의 내용에 대해 알아보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계시를 받아들이고 계시를 드러낼 주체는 ‘나’다. ‘남’이 아니다. 우선 ‘나’에 집중해 보자. 계시는 나 이외에도 ‘우리’와 ‘세계’‘우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여기선 우선 ‘나’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하느님은 ‘나’에게 무엇을 계시하셨을까. 이것을 알아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의사, 외교관, 법조인, 교육자, 운동선수, 농부, 어부….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곧바로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질지 아는 사람은 없다. 초등학생은 자신이 외교관이 될지, 의사가 될지, 법조인이 될지 모른다. 누구나 예외가 없다.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다. 지난주에 말한 계시 전(前), 계시 밖(外)의 차원이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서서히 어떤 직업으로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갈지 감을 잡게 된다. 학문적 차원의 탐색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어 국사 영어 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공부하면서 그중에 자신이 가진 능력, 탈랜트가 무엇인지 탐색하게 된다.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신중하게 자신의 진로를 고민한다. 그러다 일정기간이 지난 후, “나는 의사가 적성에 맞겠다” 혹은 “나는 운동선수가 적성에 맞겠다”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 느낌이 오면 우리는 그 분야에 점점 관심을 갖고 가까이 접하게 된다. 책 혹은 자료를 뒤지고, 관련분야 전문가들을 만나는 등 해당 분야에 많은 시간을 들여 관심을 기울인다. 일종의 준비운동 시간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결심’한다.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의과대학을 가고,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을 간다. 농부가 되고 싶다면 농과대학을 가고, 밤하늘의 별을 사랑한다면 천문학과에 입학한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계시가 내용화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계시가 구체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계시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계시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의사가 되었다고 해서 ‘멈춤’으로 있다면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없다. 의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만큼 의사는 끊임없이 공부해서 새 치료법들을 습득해야 한다. 의사 생활 10년 했다고 해서 오는 환자를 대충대충 진료하는 의사는 훌륭한 의사가 아니다. 법조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판결들을 숙지해야 한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 우승했다고 해서 운동을 그만두는 야구선수는 없다. 운동선수는 끊임없이 훈련한다.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해서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경력이 쌓이다 보면 가르칠 내용이 뻔해지고, 그 결과 안주할 수 있다. 건축 설계를 하는 사람도 늘 깨어 자신을 성장시키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만 안주할 수 있다. 환경 공법 등 새로이 대두되는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아직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지 결정하지 못한 초등학생은 계시 밖에 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과대학에 가는 것,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에 가는 것, 그리고 의사와 교사가 되는 것은 낮은 단계이지만 계시적인 차원으로 들어왔다고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계시적 차원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계시가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가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사, 진정한 교사가 될 수 있다.

박태환은 수영을 선택하기 전에 역도를 할 수도 있었고 테니스를 할 수 도 있었다. 그런 그가 수영에 입문하고 끊임없이 노력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계시적인 차원에 들어선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면 됐다’고 멈추는 순간 그의 수영 실력은 멈추게 된다.

계시 후(後)가 중요하다.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는다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계시는 ‘나’의 최후 그 날, 완성되는 것이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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