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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23)계시에 대해서…(8)

인간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나의 전 실존으로 하느님 계시 받아들이면 정신으로만 살던 인간, 영적인 삶 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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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이미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다. 주어진 것이 아니다.

물론 나의 존재 자체는 거저 주어진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원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육신과 정신과 영은 거저 주어진 것이다.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소여(所與)된 것이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는 온전히 독립적이다. ‘나’는 ‘너’가 될 수 없다. 인간 정영식이 하루 아침에 씨름선수 이만기가 될 수 없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나라는 존재는 거저 주어진 것이다.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삶은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운명론자들은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계시는 나에게 있어서 결정되어 있지 않다. 계시는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누구를 통해서? 바로 나를 통해서다. 정영식은 정영식의 삶을 창조해 나가고, 이만기는 이만기의 삶을 창조해 나간다. 삶에 있어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께서 계시를 그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 계시를 받아들여 새로운 창조를 해 나가야 한다.

실제로 세상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창조를 하도록 부추긴다. 심지어 개구리와 강아지도 늘 고정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동물들은 한파가 닥치면 지금까지 살던 장소에서 이동해 따뜻한 곳으로 찾아간다. 이렇게 동물들도 창조와 관련된, 변화된 행동양식을 보인다. 하물며 인간이 고정된 삶을 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저축을 하고, 노동을 하고, 사랑을 한다. 새로운 창조와 발전에 대한 본능적 욕구(이러한 욕구 자체도 하느님께서 이미 인간안에 형성시켜 놓으신 것이다)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와 발전에 대한 노력에는 늘 도전이 따르기 마련이다. 창조적 삶을 가로막는 일이 항상 생긴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고통 등이 그것이다.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 초월해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 인생을 살려한다. 하느님이 다 만들어 주신 것을 이용해 살아갈 뿐인데 혼자 힘으로 다하려고 한다. 계시종교를 산다는 의미는 “내 생각대로 살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의 다른 말이다. “내 생각, 내 욕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당신 생각과 맞을 수 있을 때까지 점증적으로, 지속적으로 계속 노력하겠습니다”해야 한다. 이것이 계시종교의 입문에 들어선 사람의 기본자세다. 그렇게 점차 완성된 모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되어가는 존재’다.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되어가는 존재다. 노력의 종착지는 죽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매일 일상 안에서 주어지는 요청과 도전들을 잘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극복해 나가는 힘도 하느님은 주신다. 미래를 활짝 열어주시는 하느님, 그 계시에 힘 입어서 살아가는 사람은 내일이 기대된다. 희망차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그 불확실성에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열어 보이시는 계시의 하느님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계시의 하느님이다. 뭔가 자꾸 열어 보여 주시는 하느님이다. ‘하느님 = 계시’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신 것을 나의 전 실존으로(정신만 갖고 사는 게 아니라 육신과 정신과 마음을 통틀어서) 받아들이고 구현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왜 미사참례 하는가. 나의 전 실존이 하느님 안에 배어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왜 성경공부 하는가.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계시를 잘 이해해 나의 전 실존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왜 교리를 배우는가. 교리를 통해 진정한 계시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과거, 대부분의 우리들은 정신으로만 살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신으로만 살지 말고, 인간 전 실존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의 계시를 알게 된다. 그러면 우리들의 눈이 영적으로 변화된다.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된다. 또 우리들의 손이 영적으로 변화된다. 사랑의 따뜻한 손으로 이웃을 어루만지게 된다. 우리의 입이 영적으로 변화된다. 거룩한 말을 하게 된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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