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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19) 꿈이 강요되는 사회 (1)

“헤어나올 수 없는 ‘부담감’이란 늪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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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끝내고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어느 고등학교 앞을 지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 정문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거기에는 ‘3학년 0반 000 학생, 00대학 00학부 최종 입학’이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흔히 말하는 최고라 일컫는 일류 대학에 그 학교 학생 한 명이 들어가게 된 것이 무척 큰 자랑거리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현수막’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학생이 일류 대학에 입학했으니 당연히 학교 측이 ‘현수막’을 붙여야 한다는 이상야릇한 생각 이전에, 정말 학교 측이 학생에게 그러한 ‘현수막’을 붙여도 되는지 최소한의 의견을 물어 보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또 그 ‘현수막’이 앞으로 어떠한 마음의 부담을 줄 것인지, 늘 같은 학교 동창들 사이에는 계속 ‘꼬리표’가 되어 살아가게 될 것에 대해 충분한 의사소통을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혹시나 그 학생에게 ‘네가 공부 잘 해서 일류 대학 들어갔으니 현수막 하나 멋있게 붙여 줄게. 너의 일류 대학 입학을 동네방네 자랑 한 번 해보자’하는 식으로 하지는 않았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일류 대학에 한 명, 두 명을 입학시키는 것이 그 고등학교의 최고 경사라 ‘현수막’까지 붙였다면, 나머지 그 학교 학생들이 마음속으로 가지는 심적 짜증과 함께, 모든 학생들이 ‘현수막까지 붙을 정도로 일류 대학에 먼저 입학한 동급생’을 축하하는 마음을 가질 것인지도 궁금해지면서 누군가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전 정신과 입원까지 했던 젊은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청년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 ‘현수막’까지 붙은 경력이 있는 상당한 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일류 대학에서 3학년까지 다니다가 결국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에게는 공부 외에 다른 꿈이 있었고 늘 자신을 억눌렀던 공부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현수막’이 주는 부담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처음에는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불안하고 초조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극단적 이상행동을 하게 되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 정신과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의 기능이 많이 회복된 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는데 여전히 혼자서는 사회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현수막’이 붙었던 친구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었고, 전체 동창 모임을 가도 ‘현수막’이 붙었던 동창으로만 기억되는 자신이 부담스러웠다고 합니다. 또 좀 더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누리고 싶었지만 ‘현수막’이 붙은 일류 대학(세상에 과연 일류 대학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요?)의 학생으로만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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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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