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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24)계시에 대해서…(9)

인생의 가장 큰 목표, ‘하느님 닮는 삶’/ 계시는 정(正)과 반(反)의 합(合)을 이루며/ 주님은 합을 위해 영적 힘 지속적으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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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올바른 인생길과 행복한 삶을 가로막는 일들이 무수히 생겨난다. 생각해 보라. 가슴 철렁철렁 내려앉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부당한 모함, 억울한 고발 등 전적으로 이상한 타인에 의해 나에게 고통이 오기도 하지만,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개인의 이기적인 성향 때문에 고통이 스스로 오기도 한다. 이처럼 삶을 망가트리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은 부자와 가난한 자, 지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행복한 삶, 올바른 삶을 정(正)이라고 할 때, 이러한 삶을 가로막는 것은 반(反)이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형성시켜 놓았는데, 반형성적인 요소들이 세상 곳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계시는 이러한 정(正)과 반(反)의 합(合)을 이루어내는 힘이다. 합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영적인 힘을 지속적으로 주신다.

그래서 반(反)은 얼마든지 다가와도 좋다. 피할 수도 없을뿐더러 와도 그리 큰 문제가 될 것 없다. 와도 괜찮다. 우리는 계시를 통해 그 반(反)을 극복하고 합(合)을 이뤄내면 되기 때문이다. 단 반(反)을 스스로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 물론 반을 아주 안 만들어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역사 안에서 물들어 있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기에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다. 그래서 우리는 반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계시에 물들어 있기도 하지만 한편에는 반형성적인 것에도 물들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반형성적인 것은 줄여 나가고 형성적인 것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합의 완성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차원에서 설명해 보자.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일생을 통해 성취해야 할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하느님을 온전히 닮는 것, 오직 하나뿐이다. 작은 목표들은 많을 수 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좋은 집을 사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들은 성취되고 나서도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진정한 제1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간 삶의 목표는 내가 하느님을 닮아 완전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인 존재다. 당연히 하느님을 닮아야 한다. 그것이 목표가 되고 그 목표가 성취될 때, 가장 완전한 계시의 완성이 이뤄진다. 더 나아가 가장 완전한 분에게서 오는 계시를 받아들이고 그 계시를 완성시킬 때, 우리는 그분을 닮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닮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만히 있어선 불가능하다. 기획을 세우고, 도전을 하고,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진정한 목표인 ‘하느님 닮기’는 잊어버린 채, 오직 작은 목표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안타깝다. 작은 부분에 함몰돼 큰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과제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통된 과제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과제들만 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매달린다.

첫 번째 목표만 잘 세우면 두 번째부터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목표들은 쉽게 성취해낼 수 있다. 고통도 쉽게 견뎌낼 수 있다. 하느님을 닮는 것, 이 거룩한 제1 목표를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이렇다.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궁극적인 가치는 그가 자신이 초대받았다고 알고 있는 그 신적 존재와 더불은 사랑의 일치이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생활은 이러한 신적인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써 자신의 삶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대통령과의 사랑의 일치도, 국방부 장관과의 사랑의 일치도, 여당 혹은 야당과의 사랑의 일치도 아니다.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더불어 하는 일치’다. 우리는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혼자가 아니다. 자신감 가져도 된다. 용기내도 된다. 이 모든 것이 인간 삶의 제1 목표가 어디에 있느냐는 자각을 가질 때 한꺼번에 은총처럼 나에게 체험으로 쏟아질 수 있다.

첫 단추를 풀고 지내니까 삶이 헐렁한 거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으니 다음 목표들이 줄줄이 어긋나는 거다. 첫 단추를 잘 채우면 옷이 매무새가 생긴다. 그 매무새 좋은 옷을 입고 외출하면 된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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