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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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25) 계시에 대해서…(10)

하느님은 나의 진정한 ‘사랑의 동반자’/ 주님은 인간에게 특별한 소임 주시고 자신을 내어 맡기고 주고 받기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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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나를 ‘유일무이하게 부르셨다’.

참으로 감동적인 계시다. 하느님은 능력이 없으신 건가? 아니면 능력이 너무 많으신가?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유일무이하다. 그래서 그 유일무이한 사람 각자에 대한 부름도 유일무이하다. 똑같은 귀중한 존재인 만큼 하느님 앞에서 ‘특권층’ ‘특목고’ 의 ‘특’자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진정한 창조적인 삶, 이 삶은 나밖에 만들지 못한다. 창조적인 삶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고민한다. 여가를 어떻게 지낼 것인가,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강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애는 어떻게 쌓아갈 것인가, 건강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등등. 그런데 이때 나의 힘을 줄이고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힘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그래서 나의 육신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나의 정신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나의 마음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내가 잘하면 잘할수록 하느님께서 잘하는 사람들을 연결 시켜주셔서 더 잘하도록 해 주신다. 그렇게 우리는 이웃과 손잡고 조금씩 더 큰 일을 해 나가면 된다.

그런데 자신 하나 창조시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공동체에 박혀 있으면 많은 이들이 힘들 수밖에 없다.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공동체에 많으면 그 공동체는 거꾸로 갈 수 있다. 계시 밖에서 놀면 안 된다. 계시를 힘 있게 받아들이고 구현해 나가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나의 창조도 공동체의 창조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하느님을 알게 되면 하느님께서 독특하게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소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나에게는 나만의 역할이 있다. 남을 누르고 비방해서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얻어야 한다.

계시 안에서 살게 되면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 점점 나를 더욱 내어 맡기게 된다. 영적 초보자들은 자꾸 하느님으로부터 얻으려고 하는데, 영성 생활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신을 내어 맡기게 된다.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어 주게 된다. 예수님은 다닐 때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 진짜 옷이나 돈을 들고 다니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라는 말씀이다.

세례를 갓 받은 사람은 하느님께 맡기는 것이 아마 한 10 정도 된다. 세례 받은 지 10여년 지난 신자는 한 40 맡길까? 하지만 예수님은 온전히 아버지께 대한 믿음으로 내어 맡기셨다.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셨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잘 내어 맡기지 못한다. 스스로의 성벽을 치고 방어(defence)하려 한다. 방어하려 하기 때문에 거꾸로 공격성이 생기는 것다. 그래서 디펜스가 오펜스(공격, of fence)가 된다. 오펜스에는 공격이라는 뜻 말고도 도덕적인 죄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나를 방어하지 말고 하느님께 내어 맡기면 공격할 일이 없다. 죄 지을 일도 없다. 원수가 없어지고, 오직 사랑 실천에 대한 관심만 증대된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계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삶으로 실천해 낼 수 있다.

내어 맡기면 또 하느님께서 나의 동반자가 돼 주신다. 물론 제1의 동반자는 ‘나’다. 부부도 자녀도 아니고, 교황님도 주교님도 아니다. 제1의 동반자는 나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그 분의 것이다. 하느님은 나와 상호형성의 동반자다. 하느님께서는 그냥 주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주면서 받으면서 주면서 받으면서 계속해서 give & take 한다. 이 진리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정확하게 보여주셨다. 십자가 고통을 감수할 정도로 처절하게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고, 우리에게 그 사랑을 원하신다. give & take 다.

머리로 산 사람들은 돈이 동반자이고 권력이 동반자다. 이렇게 생각하면 머리가 아닌 의지 또한 자연히 돈과 권력으로 쏠리게 되어 있다. 진정한 동반자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통찰하면 영성적, 심리적, 신체적 생활과 나의 모든 활동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흘러간다.

하느님 사랑이시다. 나와 하느님이 동반자라는 걸 깨닫게 되면 지성을 가지고 의식하고 의지를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사랑의 동반자임을 깨닫는 것은 영적인 차원이다. 마음의 차원이다. 지성으로 깨닫는 차원이 아니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그대는 저의 모든 것. 그대는 저의 기원입니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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