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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23) 산, 비우고 버리는 곳이라 하는데!

고가의 등산장비로 퇴색된 산(山)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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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사랑하는 친한 수사님이 있는데 그는 그저 산속에 자신이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 말합니다. 수사님 덕분에 크고 작은 산을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사실 산을 다니기에는 부적합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저는 산에 가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산 정상에서 본 세상은 좋았습니다.

수사님은 휴가 때가 되면 절반을 산에서 보내며 때로는 형제들과 함께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 조용히 다녀옵니다. 그 수사님이 산을 다녀온 것을 아는 것은 산행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돌아온 다음날이면 몇 년, 아니 몇 십 년 된 등산장비를 다음번 산행을 위해 깨끗이 정비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찌나 지극 정성으로 닦는지! 그리고 수도원 빨랫줄에 널려있는 침낭에 가득 배인 땀내음은 수사님이 얼마나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 수사님과 산에 가면 삶에 대해 많은 대화를 조곤조곤 나누고는 합니다. 대화 중에 수사님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도둑이 없으며, 아무리 나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산의 선하면서도 큰 기운에 눌려 저절로 마음이 비워지고, 정화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며 살고자 하는 그 수사님,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큰 산에서 잠을 자기 위해 대피소에서 묵을 경우 산장지기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8000원 요금을 받는다며, 모두가 평등한 조건의 공간에서 평등한 잠을 이루다보면 모두의 마음 또한 평등해지고 평온해지고,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수사님은 자신 스스로가 산을 통해 버림의 영성을 채우고, 비움의 충만을 느끼고, 결국 자연의 섭리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로움을 깨닫는다고 하였습니다. 수사님에게 산은 그런 곳인가 봅니다. 버리고, 비우고, 섭리를 깨닫는 곳! 문득 수사님이 점점 산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수사님의 이야기가 이젠 다 옛말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등산복과 장비가 너무 비싸졌고, 비싼 등산용품에 대한 물욕으로 산장 대피소에서 자주 도난사고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장 이용객들은 자신의 배낭이나 등산용품 등을 가슴에 품고 자야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데 말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마음은 빈부차가 없지만 산을 다니는 사람들의 복장이나 등산용품 가격이 빈부차를 조장하는 듯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지만 산행은 비움을 체험하게 해 주는 곳이 아니라 몇 백 아니 몇 천 만원의 돈을 두른 자기 전시의 장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여러분! 제발 산이 늘 그 자리에 있듯, 산을 찾는 마음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물욕을 버리고 사욕을 비우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산에서 만큼은 누구도 차별되지 않는 이 시대 마지막 평등의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산을 사랑하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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