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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28) 계시에 대해서…(13)

일상에서 계시의 새로움을 발견하다/ 주님은 매일 우리에게 계시로 새로움 선물/ 겸손되이 그 뜻에 맞는 삶 살도록 노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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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믿음은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마음이 나약한 사람들이나 의지하는 것이라고. 요즘이 어느 때인데 믿음을 이야기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구시대의 유물일 뿐,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한다. 믿음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다. 늘 새로운 것이다. 이 새로움은 그분으로부터 온다. 그분은 항상 새롭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으로 넘어서기에 늘 그분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그런 새로운 분께 대한 믿음의 신앙고백은 우리 자신도 함께 새롭게 한다. 그래서 만약 믿음이 있는 사람이 새롭지 않은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엄밀하게 말해서 진정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성실해야 합니다’라는 말보다는 어떻게 나날이 새롭게 겸손할 것인가, 어떻게 늘 새롭게 성실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각 가정에서, 수영 레슨 받으면서, 등산길에서 겸손과 성실은 늘 새로워야 한다. 믿음이 있다면 매일 미사도 늘 새롭고, 매일 만나는 똑같은 사람도 새롭게 다가온다. 진정한 믿음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가운데 있다.

더 나아가 믿음은 비추임을 받은 인식이다. 정확히 말해서 믿음의 생활은 비추임을 받은 인식의 생활이다. 그냥 인식과 비추임을 받은 인식은 다르다. 인식은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비추임을 받은 인식은 형성하는 신적 신비로부터 받은 ‘참 인식’이다. 영적인 인식이자, 영적인 지성이고, 영적인 이성이고, 영적인 의식이다.

그래서 믿음은 영성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점진적으로 삶과 세계에 대한 인간적인 지식 속에서 어떤 새로운 의미들을 알려준다. 인간의 눈과 지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과 지식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박식하다고 하더라도 알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단지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알 수 없는 그런 의미들을 밝혀낼 수 있도록 해 준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오늘날의 첨단 과학도 100년 후에는 수준 낮은 과학이 된다. 그렇게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무수히 많은 인식들이 있다. 믿음은 이러한 무수히 많은 인식들을 알게 한다.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하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믿음이 알게 한다.

계시는 하느님께서 인간이 몰랐던 것을 열어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보여줘도 알아듣는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계속해서 보여주신다. 매일 우리 눈을 새롭게, 입을 새롭게, 정신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보여 주신다.

매일 새롭게 보여주신 것을 받는 것이 계시적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성경은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것이 나온다. 매일 가장 예쁜 입으로 말하고, 예쁜 눈으로 보면 세상은 늘 새롭게 예쁘게 다가온다. 하느님은 늘 내 얼굴을 직접 새롭게 메이크업(화장)해주신다. 예쁘게 만드신다. 우리는 그렇게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최고의 미용실 서비스를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그 예뻐진 입과 눈으로 세상을 예쁘게 보지 않는다.

세상은 경외스럽다. 매일 매일 새롭게 변한다. 모든 것이 미완성이기에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과 세상뿐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모든 분야가 다 미완성이다. 역사가 종말까지 가는데 지금 10분의 1이나 왔을까. 아직 인간은 유아 단계일 뿐이다. 일생을 놓고 볼 때 유아 단계에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기들은 커피의 은은한 향도, 스마트폰의 환상적인 활용법에 대해서도 모른다. 유아가 세상을 보는 것은 간신히 5나 될까 정도다. 우리도 아직 9 이상을 모르고 있다. 아니, 하나도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겸손해야 한다. 그 겸손한 마음으로 계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모르던 것을 알게 된다. 반대로 겸손하지 않으면 계시가 멀어지고, 알아야 할 것도 모르게 된다.

믿음의 생활은, 그래서 발견에 의해 성장한다. 발견은 과학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적 차원에서 모르던 자연 법칙을 발견해내는 것은 과학자다. 하지만 시골의 촌부가 자기 삶의 분야에서 그 과학자보다 더 많은 앎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매일 매일 계시의 새로움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야 성장한다. 세수를 하면서도, 식사를 하면서도, 운동을 하면서도 새로움을 발견해 내야한다. 하느님 뜻에 합치된 운동, 합치된 세수, 합치된 빨래, 합치된 양치질을 해야 한다. 하느님의 뜻에 합치된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되어야 한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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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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