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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31) 마음의 성향들 (3)

“마음의 성향 잘 파악해 주님의 인간 되자”/ 주님은 모든 인간에게 신체·정신·마음 선물/ 인간은 하느님 뜻에 맞는 삶 살도록 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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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인간적 삶의 ‘핵심형태’ 내지 마음에 대한 기본적인 성찰을 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적 삶의 핵심형태라는 말이 뭔가. ‘형성하는 신적 신비’(나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형성시키고자 하는 신비로운 하느님)께선 나(인간)의 ‘토대를 이루는’생명 형태를, 선형성(미리 이루어지도록 형성)시켜 주셨다. 쉽게 말해서 하느님은 나를 창조하실 때 ‘내가 나 이게끔 하는 그 토대’를 미리 내 안에 심어 주셨다.

여기서 선형성의 토대를 이루는 생명 형태는 신체적 차원, 정신적 차원, 영적(마음적) 차원 3가지다. 이렇게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신체, 정신, 마음으로 이뤄져 있다. 하느님은 나에게 신체를 주셨고, 정신적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영적으로 당신을 닮아가는 초월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미리 주셨다.

문제는 이렇게 선형성된 나는 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3가지 형태로 선형성된 나는 사회 및 역사와 역동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면 삶과 죽음, 죄와 선, 덕을 쌓고 다른 이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들은 역동적 관계 안에서 각자 스스로 ‘나’라는 존재를 형성해 나간다. 나는 ‘관계성 안에서의 나’인 것이다.

이렇게 3가지 형태의 내가 사회와 역사와 관계를 맺는 가운데 3가지 형태의 관계성, 즉 여러 실제적 삶의 형태(actual life form)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외양형태(appar ent form), 교류형태(current form), 핵심형태(core form)다. 신체적 차원에서는 외양형태가 나타나고, 정신적 차원에서는 교류 형태가 나타나고, 마음적 차원에서는 핵심형태가 나타난다.

내가 춤을 춘다고 할 때, 춤추는 모습은 외양 형태이고, 춤추는 행위를 통해 즐거운 정신적 행복은 교류형태이고, 영적 내면적 마음의 충만함은 핵심형태다. 내가 노래방 기계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눈으로 가사를 읽으며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외양형태이고, 가사를 정신적으로 음미하는 것은 교류형태이며, 노래를 부르면서 그 노래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끼는 것은 핵심형태이다. 문제는 우리가 핵심형태에 얼마나 주목하느냐에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외양으로 드러나는 형태(춤추는 행위)와 교류 형태(정신적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나의 외적인 모습을 바꾸고 나의 정신적인 모습을 바꾸고 나의 마음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 우리 삶에 핵심이다. 이것을 못하기 때문에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채 살아가고,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늘 허전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상처를 준다. 톨스토이, 버트런트 러 등 많은 이들이 행복론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행복론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모두 이 구도 안에 들어있다.

정신적인 차원 혹은 육신적인 차원에서 생활하지 않고 마음을 깨달은 사람(핵심형태를 깨달은 사람)은 마음의 차원에서 계속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유지하면서 지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마음은 어떤 성향인 것일까. 인간 마음에는 원래 어떤 것이 들어 있을까. 바로 지난주에 말한 ‘하느님의 뜻에 합치하라’ ‘너를 창조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합치하라’ ‘이웃들을 연민으로 잘 돌봐라’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융화하며 지내라’ ‘참된 역량을 발휘해라’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조화로운 삶(공명적인 삶)이 터져 나오게 해야 한다.

이 공명의 삶이 되지 않으면 경외가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경외롭지 않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오!’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 4가지(합치, 융화, 연민, 역량) 성향들과 앞으로 보다 깊이 공부해 나갈 성향들(인정, 개방성, 초탈, 순명, 단순함, 외경, 확고함, 부드러움, 사밀함)이 바로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만 주신 ‘마음의 성향’들을 파악하는 구도다. 정신은 내 이권을 위해서 움직이고, 몸도 편안함을 추구하지만 마음의 성향들을 잘 파악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 마음의 성향을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치밀하게 성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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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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