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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34) 마음의 성향들 (6)

하느님 섭리대로 조화롭게 살자/ 하느님께서 만드신 나의 모습 그대로/ 좋은 관계 주고받으며 매순간 경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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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한 단어에 대해 묵상하고 넘어가자. ‘공명’(Consonance)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는 ‘共鳴’이라고 쓰는데, 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의 사상이나 감정, 행동 따위에 공감해 자기도 그와 같이 따르려 함’이라고 나와 있다. 한자 그대로의 의미는 ‘함께 우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조화, 균형, 자아완성, 자아실현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공명 자체가 담고 있는 ‘하느님 섭리와 조화로운 삶’이라는 포괄적 의미로 공명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기로 한다.

우리의 삶과 세상의 모든 것은 공명적인 것이어야 한다. 함께 울고 웃으며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해야 한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삐거덕거리는 것, 우리의 인생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모두 공명이 아닌 불공명(不共鳴) 때문이다. 결국 인생과 그 인생이 살아가는 세상이 완성되기 위해선 공명이 중요하다. 하느님과 세상과의 조화로운 삶이 중요하다.

이렇게 공명적인 삶이 될 때 형태를 주고 받는 평생에 걸친 과제가 경외에 대한 우리의 선-형성에 부합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폼(형태, form)을 주고 받으면서 산다. 그것이 인생이다. 아버지의 폼, 어머니의 폼, 자녀의 폼, 회사원의 폼을 만들고 그 폼을 주고 받으며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그렇게 주고, 받는다(give & take). 일방적으로 주는 것도 없고, 일방적으로 받는 것도 없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기를 통해 무한한 사랑의 행복을 받는다.

이렇게 주고 받는 관계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다. 미리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선-형성’(pre-formation)이다. 모든 인간은 이렇게 선-형성되어 창조되었다. 하느님께서 미리 그렇게 주고 받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하느님은 나의 모습대로 주도록, 그리고 세상의 모든 관계 안에서 받으며 살아가도록 능력을 주셨다. 이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하고 잘 주고 받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다. 내 폼을 나쁘게 만들면 나쁜 폼이 이웃에게 전달된다. 좋은 폼을 만들어 이웃에게 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창조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미리 형성해 놓으신 뜻을 깨닫지 못하면 매일 나쁜 것을 나눈다. 나쁜 것을 주니까 나쁜 것을 받는다.

이렇게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경외의 마음’이 필요하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하느님의 뜻이 있어서 태어난 것이다. 당연히 하느님의 뜻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경외는 형성하는 신적 신비이신 하느님의 뜻에 합치된 마음으로 살 때 발생한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면 놀라움이 발생하고, ‘오! 좋다’ 경탄이 저절로 일어난다. 마음의 차원에서 연민을 갖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면 여기서도 경외심이 발생한다. 내가 세상 상황과의 관계에 있어서 늘 상황을 잘 돌보고 가꾸고자 하는 융화의 마음을 가진다면 경외가 또 발생한다. 양말을 확 벗어던지는 게 아니고, 세수할 때 후다닥 해치우는 것이 아니다. 옆에 물이 튀지 않도록 조용하게 세수하고, 양말을 가지런히 벗어 놓는 융화의 마음에서 경외가 묻어난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참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외를 일으키면 진정한 공명이 일어난다.

사람을 만나든 세상의 어떤 상황을 접하든, 사건을 만나든 그 안에는 항상 보물이 숨겨져 있다. 그것이 바로 경외다. 순간순간이 경외다. 한 아기가 태어나는 것, 길을 걸어가다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가 경외다.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봐도 경외되고, 마이크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경외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잉태해 내는 흙,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모두가 경외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경외에서 먼 삶을 살아간다. 머리로만 살고 마음으로 살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기준에만 맞춰 살아간다. 그러니까 인생이 힘든 것이고 고통스럽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소임을 하지 못한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원하시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주로 우리 자신 생각만 한다. 하느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한다. 더 나쁜 것은 하느님 뜻대로 살아간다고 착각하면서 내 뜻대로 사는 것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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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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