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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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35) 마음의 성향들 (7)

하느님이 주신 ‘마음’ 그대로 살자/ 자신의 마음 잘 다스려 제대로 사용할 때/ 하느님 뜻에 조화·세상과의 융화 저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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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신앙인들이 고민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아름답게 창조했는데 정작 우리 자신과 사회와 역사는 왜 아름답지 않느냐고….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공명(Consonance, 共鳴, 하느님 뜻과의 조화)을 심어 놓으셨는데 왜 우리는 공명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냐고…. 왜 우리는 하느님을 늘 의식하며 살지 못하냐고….

대답은 간단하다. 하느님이 주신 ‘마음’(영)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및 이웃과 합치가 안 되고, 연민의 성향을 키우지 못하고, 융화하지 못해 참된 인간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연히 경외심이 생기지 않고 공명이 될 리가 없다. 이래서는 하느님 뜻에 조화되는 삶을 살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미 해결책은 나왔다.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된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 조화되는 삶을 살면 된다. 내 마음은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이다. 그래서 이 마음의 영역에는 정신이 침범하지 못한다. 정신은 나빠질 수 있지만 마음은 나빠지지 않는다. 오락가락하는 것은 정신이지 마음이 아니다. 내가 마음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마음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조금만 손을 뻗어 그 마음을 움켜쥔다면 쉽게 하느님 뜻과 조화로운 삶, 공명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애타는 호소가 있다.

“이 마음 무딘 백성아!”(신명 30, 17 등 참조)가 그것이다.

마음을 잊고 살고, 마음이 무뎌지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다.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 세상과 이웃과 내가 경외스럽게 보인다. 마음을 쓰지 않고 정신만 쓰기 때문에 이것 깨작, 저것 깨작, 이리저리 깨작깨작 ‘깨작이’가 된다.

이젠 정신적 차원의 삶에서 마음적 차원의 삶으로 넘어가야 한다. 마음은 영이다.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마음 때문이다.

마음만 찾게 되면, 우리는 공명의 삶으로 나아간다. 공명의 삶을 살게 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합치와 융화, 연민, 역량 등 마음의 성향들은 모두 하위성향들이다. 공명을 깨달으면 합치하지 말라고 해도 하느님 뜻에 합치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이웃에 대해 연민하지 말라고 해도 연민하게 되고 세상과 융화하지 말라고 해도 융화한다. 또 인간 역량을 드러내지 말라고 해도 드러낼 수 있다. 마음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가분수 인간이 된다. 육체와 정신만 커지고 육체와 머리로만 뭐든 하려 한다. 그래서 싸움이 생기고 갈등이 생긴다. 육체와 정신, 마음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한다. 이렇게 공명 성향을 깨닫게 되면 합치, 연민, 융화, 역량들과 같은 하위성향들이 저절로 발달된다. 이는 역으로도 마찬가지다. 합치, 연민, 융화, 역량들과 같은 하위성향들이 발달하면 공명의 성향은 보호되고 보충된다. 그렇게 물고 물리면서 진정한 공명적 삶으로 전환되어 간다.

내가 가진 형태와 세상이 가진 형태가 공명적으로 가지 못하고 있을 때, 나의 삶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의미가 없고 공허하다. 하느님 뜻에 조화되는 삶, 그 공명의 삶이 나를 완성시키고, 세상도 완성시킨다.

그것이 바로 형성(形成)이다. 반형성(反形成)이 아닌 형성이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주신 방향으로 형성해 나가는 삶이 하느님의 뜻에 맞고, 그 형성적 삶이 의미 있는 삶이다.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고 의미 있는 삶이 아니다. 부동산 하나 잘 건졌다고 의미 있는 삶이 아니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복 받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짧다. 그 짧은 인생을 자칫하다 보면 헛살 수 있다.

우리는 참인간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방향으로 나 스스로를 형성시켜 나가야 한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면서 원하셨던 그 본래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껍데기 인간이 아니라 참인간을 찾아야 한다. 이것을 찾지 못하면 사제 생활도, 평신도 생활도, 수도자 생활도 의미가 없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의미 없다. 먼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 인간의 참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인간이 무엇을 지향할 때 가장 아름다운지를 알아야 한다.

그 대답은 반형성이 아닌 형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 미리 섭리해 놓으신 형성의 신비를 구현해 내는 것이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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