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아! 어쩌나?] (174) Q. 요즘 아이들이 너무 불안합니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Q. 요즘 아이들이 너무 불안합니다

요즘 신문 기사를 보면 마음이 너무 불안합니다. 군(軍)에서나 사회에서나 아이들이 너무 쉽게 자살하는 이야기를 접하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나 걱정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요?
 
 A. 자매님이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을 옛날 분들이 들었으면 아마도 꾸지람을 하셨을 것입니다. 소위 `방정맞은 소리`를 한다고요. 그러나 요즘 와서는 그런 걱정을 하는 분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사고를 저지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정도이니, 부모님들이 걱정하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집니다.

 자매님 질문에 대해 요한 세례자 이야기로 답을 드릴까 합니다. 루카복음 1장 80절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아주 짧은 이 구절은 사실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이의 정신이 굳세게 자라기 위한 조건이 광야란 의미는 무엇인가? 광야는 온실과는 반대되는 곳이지요. 상징적으로 볼 때 온실은 기르는 사람의 의지가 많이 작용하는 곳이고, 광야는 자신의 의지가 자기 인생을 선택하게 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짐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른들은 무언 중에 어린아이들이 세상에 맞춰 자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특히 돈에 대해 강박적 생각을 심어줌으로써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 그리고 자기 자아보다 세상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살라고 무언의 강요를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려는 내면의 본원적 욕구를 짓밟히면 아무런 내적 희망없이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가치관에 맹종하면서 살게 된다. 즉, 정치적 구호나 도덕적 명제만을 좇아 헤매다가 결국은 정신적 방황을 한다."

 짐킨은 이런 상태를 일컬어 `존재상실의 위기`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상실의 위기 원인은 존재부정의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됐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존재상실을 당한 사람은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 열등한 존재로 인식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다가 결국 절망 안에서 죽음을 맞거나 자아상실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아이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면서 자란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요한 세례자처럼 굳센 정신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해 광야에서 뛰노는 아이처럼, 광야의 바람처럼 자유인이 돼 자기 인생을 살 수 있고, 웬만한 역경은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잘 견디고 살 수 있습니다.

 자매님도 아이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오히려 아이에게 대하는 자매님의 양육방식에 대해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Q. 동생이 천덕꾸러기 같습니다

 동생은 나이도 먹었고 직장도 다니는데, 매사 부정적이고 건성건성 사는 것이 영 천덕꾸러기 같습니다. 어린 시절도 그랬는데 어른이 돼서도 여전하네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A. 자매님 물음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 이야기가 답이 될 듯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태도 가치`란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해, 또는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운명에 직면했을 때 취하는 태도에 의해 실현되는 가치입니다.

 사람은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될 과거, 그리고 운명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런 자기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인생에서 물음을 받는 존재가 인간인데, 이 물음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따라 실현되는 가치가 태도 가치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느냐에 의해 더 좋은 인생으로 가거나 아니면 좋지 않은 인생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의 자유는 조건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조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는가에 관한 자유라는 뜻입니다.

 주님 탄생을 목격한 목동들 경우를 들자면, 그들은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슬픈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에도 자신들의 그런 운명이 언젠가는 바뀔 것이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삶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쓸데없는 일에 힘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늘 마음의 눈이 열려 있기에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갑니다.

 목동들이 아기 예수를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란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
은 참으로 힘겨운 일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삶입니다. 이런 지경에서 벗어나려면 목동들처럼 작은 희망이라도 부여잡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9-2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7

루카 10장 9절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