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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206. 진상 손님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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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얼마 전 라면이 맛없다며 항공기 안에서 여승무원을 폭행한 `라면 상무`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닌듯합니다. 저도 비슷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그런 진상 손님들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쉬쉬합니다. 고객이 줄까 봐 그러는 것 같습니다만, 하여간 불쾌한 일을 당하고 나면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데 그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여러 손님을 대하며 속을 시원하게 풀 방법은 없고, 손님들에게 제 감정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다 보니 피부 과민반응마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해야 시간에 쫓기는 감정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없애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나라 가진 자들은 왜 없는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지요?


 
 A. 요즘 언론에서 `진상`이란 말이 오르내립니다. 손님 중에서 상식과 예의를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인가 봅니다. 우선 이런 사람들이 생기게 된 배경은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학습효과에서 비롯됩니다. 즉, 어린 시절 부모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운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집안교육, 가정교육 운운 하는데, 대개 진상들은 집안교육이 잘 안 되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졸부근성`을 부모에게서 배운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위가 높고 돈이 많다고 해서 양반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가진 것이 없어도 양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자기 식솔끼리 해먹고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마치 옛날 부패한 관리들처럼, 또는 봉건사회의 종속 관계처럼 사회를 만들려는 사람은 `진상` `상것들`이란 소리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부모 교육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직장 문화와 사회적 문화입니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그런 식의 문화가 배어 있을 경우 자기도 모르게 그런 하류문화에 젖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저렴한 동남아 국적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는데 어떤 직장인들이 단체로 그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어를 잘 모르는 승무원에게 "서비스가 형편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군요. 같은 한국인으로서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하류문화가 직장문화처럼 돼버린 사례였습니다.

 작금의 사회적 풍조를 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먹고살기가 빠듯한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경제발전만을 목표로 살아왔는데,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는 사회적 부작용을 막지 못하는 바람에 소위 천민자본주의 사회,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를 오염시켰다고 봅니다. 흔히 말하는 물질만능주의가 사회적 대세가 돼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물건뿐 아니라 사람마저도 돈으로 평가하는 하류문화가 생겼고, 자신의 상품가치, 소위 연봉이 높으면 마치 자신이 사회적 신분이 올라간 사람인 양 여기는 웃지 못할 풍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라면 상무니 해외 성추행이니 등등 진상들이 생긴 것입니다.

 어쨌거나 자기 마음이 속상한데도 직장에서 손님들에게 늘 웃음을 줘야 하는 감정 노동자들이 불편한 자기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우선 공간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고성방가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 30분 정도 시간을 정해 놓고, 마음 안에 쌓인 것들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밖으로 배출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간이나 공간이 여유가 없으면 낙서장을 이용하시면 좋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오래 마음 안에 담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낙서장에 자기감정과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쏟아붓는 것입니다. 이렇게 쏟아붓듯 쓰고 시원하게 찢어버리면서 역시 감정 해소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쉴 공간이 없는 감정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해소법입니다.

 그런데 자매님의 질문 가운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진 자라는 일반화 용어는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가진 자`란 `나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비교 열등감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어떤 집단을 싸잡아 평가하는 말이기에 위험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자 그룹에 들어갔을 때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길 가능성이 큽니다. 가진 사람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많고,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그 가운데에서 횡포를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회 구조적 문제이기 전에 품성의 문제가 앞선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대우를 해주겠다고 한 공산 국가들이 봉건사회보다 더한 체제로 돼가고 있음을 보면, 구조의 문제보다 심성과 품성, 인간성 문제가 더 중요하고 우선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을 욕하다가 닮아간다고 하지요. 감정은 해소해야 하지만, 나도 그럴 수 있음에 대해서는 늘 자신을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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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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