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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344. 영적 체험이란?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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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문: 신앙생활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논쟁이 생겼습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다. 신앙은 오로지 하느님 체험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제가 신학에 관해 이야기하면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인 양 여겨 기분이 상합니다. 물론 신앙생활에서 신앙 체험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전적으로 신앙 체험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무리한 생각이 아닐까 하는데 제가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인지요?



답: 신앙 체험을 영성심리에서는 신비한 통합 체험이라고 합니다. 초월적 존재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강력한 체험, 인간 자아가 자기의 가장 깊은 영역에 돌입하였음을 의미하는 체험을 말합니다. 이런 신비한 체험은 사람이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게 해줍니다. 만약 신앙을 신학적인 논리로만 이해하려 한다면 자칫 황당무계한 논리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초월적 존재, 신비적 삶을 이성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한계성 때문에 궤변으로 일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전 신학자들이 소모적인 논쟁 끝에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형성돼 상대방을 이단으로 몰아붙이고 분열을 일으킨 역사적 사실들이 그런 부작용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신비적 통합 체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토마스 머튼 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물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임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전적으로 신에게 속한 존재임을 알고 심층적 고독 속에 머무는 시간을 가질 때 신과 합일(合一)할 수 있다.”

즉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의 때가 되었을 때 신비한 통합 체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학자 중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계십니다. 이분은 철학을 섭렵하셔서 가톨릭 교리의 근간을 만드신 대단한 신학자이신데 어느 날 집필을 끊으셨다고 합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 체험을 하신 것인데 그리고는 당신 방에 오로지 성경과 십자가만 놓고 기도에 몰입하셨다고 합니다. 하느님 체험을 하고 나면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영적 존재로서의 삶에만 매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삶도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그런 체험이 나를 완전히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단지 자신이 가는 길의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지요. 그런데 가끔 자신이 그런 체험을 통하여 완전히 다른 인격체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이려고 하고 심지어 추종자들마저 거느리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자아 팽창 현상이 자기 착각 현상을 일으켜서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독립적인 종파를 만드는 것입니다. 신적 체험을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종교 장사꾼이 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문제는 중독성입니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에 취해 있는 동안만 살맛이 나서 술을 끊지 못하듯이 영적 체험 역시 중독이 되면 일상사가 다 부질없다는 생각에 그런 체험을 얻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헤매는 영적 체험 중독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 직장 다 버리고 사교 집단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고무줄 같다고 합니다. 늘어나도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온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깊은 체험을 하였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기 마음 상태로 돌아옵니다. 그때 자신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아, 하느님께서 당신의 현존을 보여주셨구나. 감사하다’ 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도 싫은 사람들, 자신에 대한 비하감이 깊은 사람들은 그런 영적 상태에 머물려고 발버둥 치면서 일상을 거부하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분들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체험 때 주님께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한 베드로의 제안을 일축하신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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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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