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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144) 갈등을 해소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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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갈등을 해소하려면

같은 성당에 아주 싫은 자매가 있습니다. 그 자매가 하는 행동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매우 괴롭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을 여의고 자식을 키운 장한 어머니인데,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자랑이 매우 심합니다. 돈 자랑에 자식 자랑, 심지어 "가진 것이라고는 돈 밖에 없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해대서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런데 막상 돈 쓸 일이 생기면 잔돈을 쓰는데도 아주 짠순이처럼 굴어 더 미운데 주위 사람들은 그 자매가 뭐가 좋은지 칭찬만 합니다. 정말 저는 그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제가 문제인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문제인가요?
 
 A. 성당을 비롯한 종교 공동체 안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다시 물음을 던집니다. "자매님이 싫어하는 그 자매를 자매님 혼자서만 싫어하나요? 아니면 다른 분들도 다 싫어하나요?"

 이 물음에 대해 "저 혼자만 싫어해요"하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자매님 본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싫어한다면 상대방 문제이지요. 여기서는 다른 사람이 문제인 경우가 아니라 나 혼자만 상대방을 싫어해서 심리적 갈등이 생긴 경우인 것 같네요.

 왜 그런가 설명해 드리지요. 사람은 `방어기제`라는 것을 갖고 삽니다. 자기 속을 다 보이고 싶어하지 않아서 방어막처럼 사용하는 심리 기제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어기제는 `투사`입니다. 투사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마치 그것이 상대방의 것인 양 책임소재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소위 `내 탓이요`가 아니
라 `네 탓이요`를 하는 것입니다.

 투사 대상이 되는 것은 여러 가지입니다. 개인의 생각이나 가치관 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남의 생각처럼 여기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쉽게 투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 책임보다 남의 책임으로 돌렸을 때 심리적으로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험담할 때 무의식적으로 도덕적 우월감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투사가 주는 부산물입니다. 그래서 험담과 같은 투사행위는 자신의 억압된 욕구를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공격성도 없애주기에 중독성이 있어 고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투사와 같은 미성숙한 행위를 할까요? 자기 문제를 보기 힘들어하고, 자기 자신 안의 어둠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즉, 비현실적이고 회피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대개 투사라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잘 사용합니다.

 간혹 지나치게 영적 또는 신비적인 것을 추구하며 자기 안을 말끔하게 정리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대개 이런 분들이 투사가 심해 자기 안의 어둠이 마치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양 착각하고 수선을 떤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 안의 악한 성향을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양 혹은 어떤 악한 존재가 따로 존재하는 양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신문 사회면에 난 범죄기사를 보면서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것, 또한 심하게 일어나는 자기 안의 화를 분노 마귀가 들어와서 그렇다는 등 하면서 외부대상이 문제인 듯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보다 외부 적과 싸우는 것이 더 편하기에 외부로 투사를 심하게 하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유아적이고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까지 퇴행의 길로 가기 쉽습니다. 왜냐면 투사는 다른 사람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소통을 어렵게 해서 공동체 내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병적 투사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사 때마다 기도하는 `내 탓이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내 탓이요란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불편한 감정이 발생했을 때 그 감정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전가하지 말고 자기 안에서 찾으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내 안에서 문제를 찾으려면 침묵의 영성을 수련해야 합니다.

 침묵은 영성생활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진정으로 자기 안의 문제만을 보려고 노력하면 외적으로는 조용하나 내적으로는 전쟁터의 장수와 같은 심리적 상태가 됩니다. 스님들이 말하는 묵언수행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 상태를 갖는 분들은 자기 안의 문제를 보느라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 잘못을 보거나 다른 사람 결점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렇게 공동체 구성원들이 침묵 안에서 자기 문제를 보고 다듬느라 바쁘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 결점은 안 보이고 마음의 편안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 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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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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