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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41>의료민영화의 문을 열려하는가?

누구를 위한 의료민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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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마르 5,55-56).
 
 #질병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1980년대 중반 신학생 시절, 필자의 소속 본당 강론대에서 예수님이 발현하셨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오후에 외출해 성당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그 광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성당 현관 철문이 아예 없어졌으며, 마당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성당 앞 대로는 교통경찰이 차량과 통행인을 통제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미사 중에 강론대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누군가 알리면서 생긴 일이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몰려왔음을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만큼 사람은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덕분에 질병의 고통에서 어느정도 해방되고, 수명도 많이 연장됐다. 불치 혹은 난치 질환에 대한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적어도 겉으로는 축복의 세상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께 찾아가지 않고,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병원을 찾아가면 어지간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렇지만 과학과 의학의 힘만으로 질병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어서 더 안타까울 수 있다. 과학과 의학 발달에 막대한 재원이 투입된 까닭이다. 의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는 다른 직종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보다 몇 배 재원이 요구된다. 그렇게 많은 재화가 투입된 과학과 의학기술을 거저 이용할 수는 없다. 아주 단순하게 구별하면, 사회와 국가가 대가를 치르든, 환자와 그 가족이 대가를 치르든, 아니면 분담해서 치르든 해야 한다. 의료행위 대가를 온전히 국가가 치르는 경우를 사회주의체제 의료정책이라 부를 수 있다. 환자와 그 가족이 그 부담을 전부 짊어지는 경우는 자유주의 의료정책이라 부를 만하다.
 
 #부에 따른 선택적 진료 합당한가
 값비싼 의료비를 사회 구성원이 합의해 평소 조금씩 모았다가 질병에 걸렸을 때 지원하는 제도를 이른바 `보험`이라 한다. 이 보험은 보험가입자와 보험회사 사이의 계약에 의해 성립되는데, 이를 `사보험`이라 한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전 국민이 국가제도로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에 강제로 가입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공보험`이라 부른다.

 공보험 운영에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일부 언론이 대대적으로 비판하는 도덕적 해이가 바로 그것이다. 적은 보험료를 내고 치료를 받다 보니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질병에도 병원을 안방 드나들 듯해서 건강보험재정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에서도 도덕적 해이는 발생한다. 보험료 과다청구가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류언론은 고액납부자의 회피는 이 도덕적 해이를 다룰 때보다 크게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국민건강보험제도 운영에서 발생하는 몇몇 부정적 현상을 근거로 이른바 의료 민영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부정적 현상을 극복하는 길은 사회 구성원이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수준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가가 전국민을 상대로 강제로 보험제도를 운영(당연지정제)하기보다는 민간 영역에서 운영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더해진다. 이른바 민영화다.

 얼핏 보면 합리적 주장으로 들리지만, 잔인함이 드러난다. 속된 표현으로 치료비를 부담할 수 없으면 죽어야 한다는 식이다. 그 잔인함을 희석하기 위해 그들은 당연지정제의 예외를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혹은 특별법이 적용되는 이른바 경제자유 특별구역에 외국인을 위한 병원을 따로 세울 터이니, 이 병원에서는 외국인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만이라도 치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마침내 지난 10월 29일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대통령선거에 국민 관심이 쏠린 틈을 타서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의 개설허가절차 등에 관한 규칙`을 고시해 영리병원을 허용했다. 병원 설립 조건은 외국자본 50 이상, 의료진 10 이상 외국의사면허 소지 등이다. 영리병원에서는 내국인 환자도 100 진료 가능하다.

 머지않아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돈벌이(산업)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들은 병원 대신에 `장터`를 배회하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게 될지 모르겠다.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만든 `식코`를 보라. 미국 민간의료보험 조직의 부조리적 폐해의 이면을 폭로한 영화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장사하는 먼나라의 의료보험 현실이 언젠가 우리 모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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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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