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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성문(城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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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텔 단의 성문. 오른편 아래쪽에 구약시대 제1성전기 때의 왕좌가 보인다. 임금이나 원로들이 성문에서 백성들의 정치적 법적 고민을 해결했던 흔적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최북지역 ‘텔 단’에 가면 제1성전기 때 성문이 남아 있다.

‘텔 단’은 고대 단 지파가 살았던 정착촌으로서 ‘텔’은 인적이 끊겨 폐허가 된 언덕을 뜻한다. 제1성전기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봉헌한 후부터(기원전 10세기) 그 성전이 무너진 바빌론 유배까지의(기원전 6세기) 기간을 가리킨다. 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텔 단은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고대 정착촌을 빠져 나오는 출구에 바로 성문 유적이 있는데 그 앞에는 성읍 수장이나 판관이 앉았을 왕좌가 보인다.

일견 성문 앞에 놓인 왕좌는 의아함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구약 시대에는 중요한 사람들이 성문 앞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이 실패한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 전에 마하나임 성문 앞에 좌정했다(2사무 19 9). 압살롬은 아버지를 반역하기 전에 예루살렘 성문 앞을 어슬렁거리며 재판하려고 임금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며 마음을 사려 했다(2사무 15 2-4). 북왕국 임금 아합은 남왕국 임금 여호사팟과 함께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마련된 왕좌에 앉아 있었다(1열왕 22 10). 보아즈는 베들레헴 성문으로 올라가 원로들을 앉게 한 후(룻 4 1-2) 룻과 혼인하는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했다. 아모 5 10에도 성문의 역할을 암시해 주는 구절이 나온다(“성문에서 올바로 시비를 가리는 이를 미워하고 바른 말하는 이를 역겨워한다”).

곧 위 구절들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성문에서 정치적인 또는 법적인 일들을 많이 처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금이나 원로들이 앉아 공적인 사안을 의논하거나 백성들에게 알리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시비를 가려 주는 재판도 했던 것 같다. 백성들은 또 성문 앞에 있는 원로들에게 가서 법적인 문제를 문의할 수도 있었다. 원로들은 경험이 많고 연륜이 깊어 현인으로 존경 받았던 이들이다. 그래서 주로 조언자 역할을 맡았으며(1열왕 12 6 참조) 임금 대신 재판 소임도 담당했다(곤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성읍 원로들에게 재판을 청하도록 규정한 신명 22 13-19을 참조).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도피 성읍으로 피신하려 할 때도 그 성읍의 성문 어귀에서 원로들에게 자기 사정을 먼저 설명해야 했다(여호 20 3-4). 게다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이들은 성문 앞에 앉는 것을 선호했다.

성 내외 사람들로 붐비는 성문에 앉아 있으면 바깥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확보한 정보는 민생이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다른 장소가 아니라 굳이 성문인 까닭은 많은 수의 군중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성문 앞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이스라엘은 유사시에 대비하여 성읍을 요새처럼 만들고 그 안에 거주했다. 불가피하게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이 터질 때마다 성읍 안으로 도피해야 했다(예레 4 5-6 참조). 사정이 이러하니 성 안은 주민들의 거주지로 너무 조밀하여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곳은 성문 앞 밖에 없었다.

성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이기에 그곳에서 공적으로 인증 받는 일도 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성문 앞에서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으로부터 막펠라 동굴을 구입했으며 그곳에 모인 히타이트 사람들이 그 매매를 인증해 주었다(창세 23 10.18). 신랑이 자기 아내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거짓 주장을 할 때도 처녀의 가족들은 성문 앞으로 원로들에게 증거물을 가지고 가서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신명 23 13-15). 보아즈가 룻을 아내로 확정 받을 때는 “성문에 있던 온 백성과 원로들이” 증인이 되어 주었다(룻 4 11).

이처럼 성문 앞에서 임금이나 원로들이 재판을 하거나 정치적•법적 문제들을 논하고 처리했기에 텔 단에서 발견된 왕좌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텔 단 성문이 유적으로 남았지만 당시에는 그 성읍에서 가장 번화한 장소였을 것이다. 이런 성문의 역할은 잠언에도 반영되어 하느님의 ‘지혜’가 번화가인 ‘성문 어귀’에서 훈계하고 가르친다(잠언 1 20-23 8 2-4). 곧 잠언은 하느님의 지혜를 슬기로운 여인으로 의인화하고 성문에서 백성들을 지도하고 이끄는 원로 곧 현인의 모습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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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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