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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나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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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 이스라엘은 개양귀비와 아네모네를 흐드러지게 피워 찬란한 꽃동산을 연출한다. 이 붉은 꽃들이 바로 예수님이 솔로몬의 영화보다 아름답다 하신 ‘들판의 나리꽃’이다(마태 6 28-29). 나인 마을에도 해마다 피어 외아들을 잃었던 과부의 붉은 아픔을(루카 7 12) 온몸으로 표현해 준다.

나인은 갈릴래아 지방에 속한 조그만 마을이다. 나자렛이나 타보르 산에서 버스로 15~20분가량 떨어져 있다. 지금은 아랍 모슬렘들이 산다. 찾아오는 이 없이 마을 가운데 덩그러니 기념 성당만 남아 그 모습이 꼭 과부 같다. 2000년 전을 떠올려 보라고 권유라도 하듯이. 예수님은 이곳에서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다.

과부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불쌍한 계층 가운데 하나였다. 소작을 하려 해도 남편 없이 혼자 농사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타인의 동정과 연민에 의존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과부에게 수치가 되었던 것 같다(이사 54 4 참조). 모세오경은 가난의 굴레에 빠지기 쉬운 과부나 고아 레위인들을 위해 세 해마다 소출의 십 분의 일을 나누라고 명한다(신명 14 28-29). 레위인들이 이 율법에 포함되어 의외일 수 있으나 상속 재산을 따로 받지 못해(민수 18 20 등) 빈곤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과부나 고아들은 추수 때 들판에서 이삭 줍는 일도 허가되었다(신명 24 19 룻 2 2).

과부에 대한 배려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 근동 전체에서 비슷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법전 가운데 하나인 함무라비 법을 보면 고아와 과부에게 정의를 베풀도록 신들이 함무라비를 임금으로 세웠다고 기록한다. 고대 가나안 문헌도 ‘단엘’이라는 임금을 고아와 과부를 보호한 정의로운 인물로 칭송했다.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라는 독려가 많았음은 그만큼 학대하기 쉽고 그런 사례도 많았다는 반증이다. 기원전 6세기에는 에제키엘이 타락한 기득권층을 이렇게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제후들은 저마다 제 권력을 믿고 네 안에서 사람들의 피를 쏟는다. 네 안에서 사람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고 고아와 과부를 학대한다”(에제 22 6-7). 이런 죄들이 한계점에 달해 이스라엘이 마침내 몰락하자 이스라엘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학대하던 과부와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다(애가 1 1: “아 사람들로 붐비던 도성이 외로이 앉아 있다. 뭇 나라 가운데에서 뛰어나던 도성이 과부처럼 되고 말았구나”).

루카 7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카파르나움에서 백인대장의 종을 고치신 뒤 나인으로 가셨다고 한다. 카파르나움에서 나인까지 버스로 50분가량 소요된다. 그때 나인에는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 장례 행렬이 나오고 있었다. 과부의 외아들이면 그 여인에게 모든 것을 뜻한다. 자식 잃은 어미의 얼굴에서 비극을 읽으신 예수님은 울지 말라 이르신 뒤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셨다. 그러자 군중이 ‘우리 가운데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며 감탄하는데 이 감탄은 엘리야만큼 위대한 예언자가 등장했다는 칭송이다. 기원전 9세기에 엘리야는 사렙타에서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킨 적이 있었다(1열왕 17 1-24). 사렙타는 티로와 시돈 사이에 자리 잡은 고대 페니키아 도시로서 시돈에 예속된 곳이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해안가이며 현재는 레바논 땅이다. 엘리야는 그곳에서 기아에 시달리던 과부를 구하고 병으로 죽은 아들을 되살렸다. 이 기적은 후대에도 깊은 인상을 남겨 예수님은 나자렛 회당에서 이 기적을 예로 들었다(루카 4 26). 나인에서는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켜 주셨다. 루카 복음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이 아들을 과부에게 돌려 주셨다’(7 15)는 표현을 써 엘리야가 아들을 그 어머니에게 돌려 준 1열왕 17 23을 비슷하게 되풀이한다.

예수님이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돌보셨듯이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참 신앙의 의미를 되새긴다. 늘 빈곤했던 옛 과부와 오늘도 홀로 처량한 나인 마을의 성당처럼 우리 사회에는 외면당한 이들이 무척 많다. 결국 우리 신앙은 이런 이들을 보듬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으로 축약되지 않을까? 게다가 과부를 돌보심 같이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요한 14 18은 하느님이 우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으시듯이 우리도 서러운 고아나 과부를 그리고 또 다른 약자들을 그냥 두지 말라는 당부로 다가온다.

김명숙(소피아)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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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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